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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아이 마음

부모의 불신이 아이의 자존감을 낮추는 이유

nzhappyworld 2026. 8. 3. 09:50

목차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이 되자 저도 모르게 기대가 커졌습니다. 이제는 자기 물건을 챙기고, 해야 할 일도 알아서 할 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아침마다 준비물을 찾았고, 제가 시키지 않으면 방 정리도 미뤘습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저는 습관처럼 “고등학생이 왜 이렇게 철이 없니?”라고 말했습니다.

    고등학생이면 알아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아들이 학교에 갈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체육복을 찾고 있었습니다. 저는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다가 그 모습을 보고 또 화가 났습니다.

    “어제 미리 챙기라고 했잖아.”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

    “네 물건인데 엄마가 어떻게 알아? 이제 고등학생이야. 언제까지 엄마가 챙겨 줘야 해?”

    아들은 대답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학교에 늦을까 봐 결국 빨래 바구니와 서랍을 뒤져 체육복을 찾아 주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마디를 더 보탰습니다.

    “이러니까 엄마가 너를 못 믿는 거야.”

    그날 아들은 체육복을 받아 들고 말없이 집을 나갔습니다. 저는 학교에 늦지 않게 보냈다는 생각에 안심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했던 말이 아이 마음에 오래 남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동생에게 한 말에서 제 모습을 봤습니다

    며칠 뒤 아들이 동생에게 숙제를 알려 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동생이 같은 문제를 여러 번 묻자 아들이 짜증을 내며 말했습니다.

    “그것도 몰라? 아까 알려 줬잖아.”

    순간 제가 아들에게 하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말투와 표정까지 저를 닮아 있었습니다.

    저는 아들을 불러 동생에게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툭 내뱉었습니다.

    “엄마도 나한테 맨날 그렇게 말하잖아.”

    처음에는 부모에게 말대꾸한다고 생각해 기분이 상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아이가 실수할 때마다 이유를 듣기 전에 먼저 답답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이에게는 말로만 “너를 믿는다”고 했습니다. 실제로는 가방을 다시 열어 보고, 숙제를 했는지 확인하고, 준비물을 챙겼는지 여러 번 물었습니다. 제가 확인해야 마음이 놓였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내가 뭘 해도 못 믿잖아”

    그날 저녁 아들의 방에 들어가 물었습니다.

    “엄마가 너를 너무 못 믿는 것 같아?”

    아들은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습니다.

    “응. 내가 한다고 해도 엄마가 다시 확인하잖아.”

    “안 하면 어떡하나 걱정돼서 그러는 거야.”

    “그러니까 그냥 엄마가 다 해. 나는 해보기도 전에 혼나잖아.”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뜨끔했습니다. 저는 아이를 도와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실수하기 전에 제가 먼저 움직였고, 아이가 스스로 해볼 기회까지 가져가고 있었습니다.

    더 마음에 걸렸던 것은 “철이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행동 하나를 고치려고 한 말이었지만, 아이는 자신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날 바로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괜히 부모의 권위가 약해지는 것 같아 머뭇거렸습니다. 한참 뒤에야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엄마가 걱정된다는 이유로 너를 너무 못 믿었나 봐. 철이 없다고 말한 것도 미안해.”

    아들은 별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큰 반응은 없었지만 굳어 있던 표정이 조금 풀려 보였습니다.

    대신해 주는 일을 하나씩 줄였습니다

    다음 날부터 모든 일이 갑자기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저도 여전히 아들이 준비물을 빼놓을까 걱정됐습니다. 그래도 먼저 가방을 열어 보는 행동부터 멈췄습니다.

    “내일 준비는 했어?”

    한 번 물은 뒤 아들이 했다고 하면 그대로 두었습니다. 실제로 준비물을 놓고 간 날도 있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그럴 줄 알았다”고 말했겠지만, 이번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아들은 친구에게 빌리거나 다음 날 가져가겠다고 했습니다. 생각보다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자신이 한 실수를 직접 정리했습니다.

    방 정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장 치우라고 여러 번 말하는 대신 언제 정리할 것인지 물었습니다.

    “오늘 저녁에 할게.”

    “그래. 네가 말한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면 그때 다시 이야기할게.”

    약속한 시간을 넘기는 날도 있었지만, 제가 먼저 물건을 정리하거나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아이가 자기 물건을 직접 정리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는 일이 잔소리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지만 조금씩 익숙해졌습니다.

    잔소리를 줄이니 다른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제가 확인하는 말을 줄이자 처음에는 집이 조용해졌습니다. 아들도 바로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저녁, 아들이 식탁에 앉아 학교 이야기를 먼저 꺼냈습니다.

    친구와 의견이 맞지 않아 기분이 상했던 이야기였습니다. 예전 같으면 제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부터 알려 줬을 것입니다. 그날은 아이가 하는 말을 중간에 끊지 않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아들은 잠시 생각한 뒤 다음 날 친구에게 먼저 이야기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잘했다거나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아이에게 필요했던 것은 부모가 대신 답을 정해 주는 일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끝까지 말할 수 있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믿는다는 것은 모른 척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를 믿어준다고 해서 아무 행동이나 허용한 것은 아닙니다. 가족끼리 정한 귀가 시간이나 휴대전화 사용 약속을 어기면 분명하게 이야기했습니다. 다만 아이의 성격 전체를 나무라는 말은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넌 왜 항상 그래?” 대신 “오늘 약속한 시간이 지났어”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철이 없다” 대신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잊지 않을까?”라고 물었습니다.

    말 몇 마디를 바꾸는 일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집에서는 싸움의 길이를 줄여 주었습니다. 아이도 자신의 잘못을 들켰을 때 무조건 변명하거나 방문부터 닫는 일이 조금씩 줄었습니다.

    저 역시 완전히 달라진 부모는 아닙니다. 바쁜 아침에는 여전히 목소리가 커지고, 아이의 느린 행동을 보면 답답합니다. 그럴 때마다 한 번 더 생각합니다.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말이 무엇인지, 아니면 제가 불안해서 말을 쏟아내려는 것인지 말입니다.

    아들은 아직 실수도 하고 약속을 잊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그런 모습을 보고 아이 전체를 판단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고등학생이 되었다고 하루아침에 어른처럼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아들이 등교하기 전에 현관에서 말했습니다.

    “엄마, 오늘 체육복 내가 챙겼어.”

    저는 가방을 다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래, 네가 챙겼다니 믿을게.”

    아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 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작은 대화였지만 예전의 우리 집 아침과는 달랐습니다. 아이를 믿어주는 일은 실수를 못 본 척하는 것이 아니라, 실수한 뒤에도 스스로 다시 해볼 자리를 남겨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