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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적인 아이를 외향적으로 바꾸면 사회성이 좋아질까요? 저는 오랫동안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아동심리상담 현장에서 들은 말은 정반대였습니다. 기질(temperament)은 고치는 게 아니라, 지켜줘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글은 하은이 엄마로서 제가 직접 겪은 시행착오와, 그 끝에서 배운 것들을 담았습니다.

기질을 문제로 보면 아이가 흔들린다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들이 뛰어노는 걸 한참 지켜보기만 하던 하은이를 보면서, 저는 솔직히 불안했습니다. 유치원 참관수업에서도 손 한 번 번쩍 들지 않는 아이를 보며 "저러다 사회생활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질 않았습니다. 친정엄마, 시댁 어른들도 만날 때마다 걱정 섞인 말씀을 하셨고, 저는 그 말에 동조해서 "왜 이렇게 소극적이야", "친구한테 먼저 인사해봐"를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발표회 연습 날, 아이가 대사를 못 하겠다고 울면서 버텼고, 억지로 무대에 올려보냈더니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아무 말도 못 하고 울어버렸습니다. 그날 처음으로 제가 뭔가 크게 잘못하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후 아동심리상담센터를 찾았을 때, 상담사가 가장 먼저 짚어준 개념이 바로 기질(temperament)이었습니다. 기질이란 타고난 심리적 반응 양식으로, 환경이나 훈육으로 바꾸기 어려운 고유한 특성을 말합니다. 아이가 낯선 자극 앞에서 천천히 관찰하는 건 버릇이 아니라 기질이었던 겁니다.
상담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성적인 기질은 고쳐야 할 문제가 아니라 타고난 기질의 한 유형입니다. 이걸 억지로 외향적으로 바꾸려 하면 아이는 자기 자신이 잘못된 존재라고 느끼게 됩니다." 제가 직접 들은 말인데도, 그 순간 얼마나 많은 '고쳐야 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하은이에게 줬는지 생각하니 가슴이 내려앉았습니다.
- 기질은 타고난 것으로, 훈육이나 반복 연습으로 근본적으로 바꾸기 어렵습니다
- 내성적 기질의 아이는 소수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에너지를 충전합니다
- 기질을 문제로 규정하면 아이는 자기 자신을 결함 있는 존재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사회성과 내향성은 다른 문제다
상담을 받기 전까지 저는 내성적인 것과 사회성이 부족한 것을 같은 말로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상담사가 딱 잘라 말했습니다. "내성적인 것과 사회성이 부족한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사회성(social competence)이란 타인과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외향적인 아이가 이 능력을 빠르게 넓게 발휘한다면, 내성적인 아이는 느리게, 그러나 깊게 발휘합니다.
하버드대 심리 연구진이 미국 내 13세 청소년 184명을 10년간 추적 관찰한 연구를 국제 학술지 「아동발달(Child Development)」에 발표한 바 있습니다(출처: Society for Research in Child Development). 이 연구에 따르면, 어린 시절 내성적이라고 평가받은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연구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외향적인 아이들은 이른 나이에 또래 집단의 영향을 크게 받아 흡연, 음주, 반사회적 집단 가담 등의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입니다.
반면 자신의 세계가 확고한 내성적인 아이는 그런 흔들림에 덜 휩쓸리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하은이가 친구를 많이 사귀지 못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제가 그 모습을 문제로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문제였던 겁니다. 한두 명과 깊이 있게 관계 맺는 능력은 오히려 내성적인 아이가 뛰어난 경우가 많다는 것도 이때 처음 알았습니다.
자유특성 이론이 알려준 현명한 육아법
상담에서 두 번째로 배운 개념이 자유특성 이론(Free Trait Theory)이었습니다. 자유특성이란 캐나다 심리학자 브라이언 리틀(Brian Little)이 제안한 개념으로, 자신의 핵심 프로젝트 안에서 일정 기간 타고난 기질과 다른 행동을 의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쉽게 말해, 내성적인 사람도 필요한 순간에는 외향적인 '가면'을 잠깐 쓸 수 있다는 겁니다(출처: Harvard University, Brian Little).
이 이론이 중요한 이유는, 이 가면을 '기술'로 쓰는 것과 '의무'로 강요받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필요할 때 스스로 선택해서 쓰는 가면은 성장의 도구가 됩니다. 하지만 타고난 기질을 억압당한 채 늘 외향적인 척해야 한다면, 그 아이는 혼자 있는 시간조차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상담에서 만난 사례처럼, 집에 혼자 있는 게 편한데도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건가" 하는 불안을 느끼는 아이가 되는 겁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아이를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이 오히려 아이를 불안하게 만드는 구조라니요.
그렇다면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상담 이후 실제로 바꾼 것은 말 한 마디였습니다. "왜 이렇게 소극적이야" 대신 "네가 준비되면 그때 인사해도 돼"라고 말해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발표나 낯선 상황 앞에서 갑자기 밀어 넣는 대신, 미리 어떤 상황인지 설명해주고 마음의 준비 시간을 충분히 주는 방식으로 바꿨습니다. 작은 변화인데, 하은이가 유치원 가기 싫다는 말을 점차 덜 하게 됐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내성적인 아이, 그냥 두면 친구 못 사귀는 거 아닌가요?
A. 내성적인 기질과 사회성 부족은 다릅니다. 내성적인 아이는 넓게 사귀기보다 깊게 사귀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억지로 사교적인 상황에 밀어 넣기보다, 아이가 편안하게 느끼는 소규모 상황에서 관계를 맺을 기회를 먼저 주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Q. 내성적인 기질도 훈련하면 바뀔 수 있나요?
A. 기질 자체를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자유특성 이론에 따르면, 필요한 순간 외향적인 행동을 선택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은 키울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기질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기질 위에 기술을 얹는 것입니다. 이 차이를 부모가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Q. 아이가 발표를 너무 무서워하는데 어떻게 도와주나요?
A. 갑작스럽게 상황에 노출시키기보다, 미리 어떤 상황인지 충분히 설명하고 마음의 준비 시간을 주는 방식이 좋습니다. 제가 경험해보니, "준비되면 해도 돼"라는 말 한 마디가 아이의 긴장감을 크게 줄여줬습니다. 무대 위에서 강제로 발표시키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습니다.
Q. 주변 어른들이 "더 활발하게 키워야 한다"고 할 때 어떻게 대응하나요?
A. 저는 상담 이후 "우리 아이는 이런 아이예요"라고 담담히 말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설명을 길게 하기보다 아이의 기질을 부모가 먼저 받아들이고 있다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부모가 흔들리지 않아야 아이도 자기 속도로 세상에 나갈 용기를 냅니다.
결론
상담실을 나오던 날,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하은이에게 전화해서 "오늘 유치원에서 힘든 거 있었어?"라고 물어보는 거였습니다. 아이를 바꾸려는 질문 대신, 그냥 아이의 하루를 들어주는 질문이었습니다. 사소한 것 같지만,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아이를 세상의 기준에 맞추려 하기보다, 아이가 가진 고유한 기질을 지켜주는 것이 진짜 부모의 역할이라는 걸 뒤늦게 배웠습니다. 내성적인 아이는 고쳐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부모가 조급해하지 않을 때, 아이는 자기 속도로 세상에 나갈 용기를 냅니다. 지금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신 분이라면, 먼저 아이의 기질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