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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놔두라"는 말이 상담사 입에서 나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아이가 학교를 가기 싫어서 핑계를 대는 줄만 알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고, 억지로라도 학교에 보내느곳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이늬 표정을 점점 어두워졌고 대화도 줄어들었습니다.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다투다 얼굴뼈가 골절되는 일이 생겪습니다. 가혜자 측은 아이가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 했고 학교를 등교 거부하는 아이를 보면서, 저는 어떻게든 다시 학교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 조언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제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학교폭력 이후 찾아온 등교거부, 저도 처음엔 몰랐습니다
점심시간에 친구와 다투다 얼굴뼈가 골절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가해 측은 아이가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 했고, 정작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담임 선생님께 사정을 물어봐도 돌아오는 말은 "어차피 자기 말은 안 믿어 준다"였습니다. 그 말 뒤에는 "공부 못하는 아이는 사람 취급도 안 한다"는 체념이 섞여 있었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이 지점이 단순한 등교 거부가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느낀 건 신체적 부상만이 아니라 학교라는 공간 자체에 대한 신뢰 붕괴였습니다. 여기서 학교폭력이란 신체적 폭력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피해 사실이 제대로 접수되지 않고 교사마저 아이의 말을 외면할 때, 그 자체가 학교 내 2차 피해로 이어집니다. 이는 교육부가 운영하는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 관련 지침에서도 명시하고 있는 부분입니다(출처: 교육부).
그 이후 아이의 일상은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새벽 두세 시에 잠들고 오후 두 시에 일어나며, 게임과 만화로만 시간을 채웠습니다. 검정고시를 보겠다고 했지만 책은 거의 펼치지 않았습니다. 심리 상담을 연결해 봤지만 협조 자체를 거부했습니다. 저는 두 사람 사이에서—남편은 답답해하고, 아이는 닫혀 있고—혼자 속을 끓이는 날이 반복됐습니다.
등교거부가 보내는 신호
등교거부는 단순한 게으름이나 의지 부족이 아닙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학교 회피 행동(School Refusal Behavior)'이라 부릅니다. 이는 학교와 연결된 특정 자극—대인관계 갈등, 교사와의 신뢰 손상, 안전에 대한 위협—이 불안이나 공포 반응을 유발할 때 나타나는 심리적 자기 보호 기제입니다. 쉽게 말해 몸이 가지 않는 게 아니라 마음이 이미 그 공간에서 철수한 상태입니다.
문제는 이 상태를 외부에서 강제로 되돌리려 할수록, 저항은 더 단단해진다는 것입니다. 제가 억지로 등교를 밀어붙이려 했을 때 느낀 건 그 두꺼운 벽이었습니다. 엄마 말을 안 듣는 게 아니라, 더 이상 누구의 말도 들을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었습니다.
- 신체 부상 이후 학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경우, 단순 등교 권유는 효과가 없습니다
- 학교폭력 처리 절차(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등)를 공식적으로 활용하지 않으면 피해가 묻힐 수 있습니다
- 심리 상담을 거부하는 아이에게는 강제보다 선택권을 주는 방식이 더 유효합니다
- 수면 역전, 게임 몰입은 2차 증상일 수 있으며 원인 자체를 먼저 짚어야 합니다
부모 태도가 먼저였다는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상담사가 꺼낸 말은 아이 얘기가 아니었습니다. "시댁 형제들과 오래 인연을 끊고 지내왔지요?"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등골이 서늘했습니다. 맞는 말이었거든요. 저는 이미 오래전부터 불편한 관계는 조용히 끊어내는 방식으로 살아왔습니다.
그 경험이 아이한테 이어졌다는 건, 처음에는 인정하기 싫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이가 학교와 관계를 끊는 방식이 제가 살아온 방식과 너무 닮아 있었습니다. 불편하면 자른다. 힘들면 닫는다. 제 경험상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놔두라"는 말의 진짜 뜻
상담사의 조언은 방임이 아니었습니다. 억지로 잡아끌어도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부모가 먼저 자기 안의 불편함을 다스려야 아이가 느끼는 압박도 서서히 줄어든다는 뜻이었습니다. 여기서 부모의 '참회 수행'이란 거창한 종교적 행위가 아닙니다. 자신이 관계를 대해온 방식을 돌아보고, 지금 아이를 볼 때 올라오는 불안과 통제 욕구를 먼저 알아차리는 내적 작업을 의미합니다.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 관점에서 보면, 이는 꽤 타당한 접근입니다. 애착 이론이란 부모와 자녀 간의 정서적 유대 방식이 아이의 대인관계 패턴을 형성한다는 이론으로, 영국의 정신과 의사 존 볼비(John Bowlby)가 체계화했습니다. 부모가 먼저 안정적인 정서 상태를 회복해야 아이도 서서히 안전감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여러 임상 현장에서 확인된 바 있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물론 이 조언만이 전부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겪은 건 구체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얼굴뼈가 부러지는 신체 폭력이 있었고, 교사로부터의 부정적 반응이 있었습니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절차나 전문적인 심리 치료 연결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부모의 태도 변화와 외부 지원 연결, 이 두 가지가 동시에 가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때 느낀 건, 아이를 고치려 하기 전에 저 자신이 먼저 조용해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불안한 엄마 앞에서 아이가 마음을 열 리 없거든요. 아이를 향한 시선이 걱정과 압박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수용으로 바뀔 때, 그때 비로소 뭔가 달라지기 시작한다는 걸 저는 서서히 실감하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아이가 심리 상담을 거부할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강제로 연결하려 할수록 저항이 커지는 걸 저도 직접 경험했습니다. 처음에는 상담을 목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작은 것들—좋아하는 활동, 대화 주제—부터 공간을 열어두는 방식이 더 유효했습니다. 상담 자체보다 아이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관계를 먼저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Q. 검정고시를 본다는 아이, 믿어도 될까요?
A. 책을 펼치지 않는 상태라면 당장의 실행력보다 그 말이 가진 의미에 집중하는 게 낫습니다. "검정고시를 보겠다"는 말은 완전한 포기가 아니라 나름의 출구를 찾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당장 공부를 시작하지 않더라도, 그 선택을 존중하는 태도가 오히려 아이가 움직이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Q. 학교폭력 피해인데 학교에서 제대로 처리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담임 교사 선에서 해결되지 않을 때는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 공식 심의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이 위원회는 피해 학생의 보호 조치와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를 결정하는 공식 기구입니다. 필요하다면 교육지원청 산하 학교폭력 전담 기구나 117 학교폭력 신고센터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Q. "그냥 놔두라"는 조언, 정말 효과가 있나요?
A. 방임과 다릅니다. 아이를 방치하는 게 아니라, 통제하려는 부모의 불안을 먼저 내려놓는다는 뜻입니다. 제 경험상 억지로 끌어당길수록 아이는 더 멀어졌습니다. 다만 이 접근이 효과를 내려면 부모 자신이 내면을 돌아보는 작업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고, 그 과정에서 전문 상담사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결론
아이를 어떻게든 학교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 저는 정작 아이가 왜 그 공간에서 나왔는지를 보지 못했습니다. 신체 폭력, 교사의 외면, 쌓인 무력감—이 모든 것이 아이에게는 그 공간을 떠나야 할 충분한 이유였습니다. 그걸 인정하는 것부터가 시작이었습니다.
부모의 태도 변화와 함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등 공식 절차를 통한 외부 지원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제 최종 판단입니다. 모든 원인을 부모 탓으로만 돌리기보다, 아이가 겪은 구체적 사건에도 충분히 응답하는 것이 균형 잡힌 접근입니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먼저 전문 상담사를 통해 부모 자신의 상태를 점검해 보시길 권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아이를 바꾸려고만 했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제 태도가 달라지자 아이도 아주 천천히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해결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부모가 먼저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 그리고 필요한 도움을 함께 받는 것이 결국 가장 현실적인 출발점이라는 것을 지금은 믿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