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아들이 유치원에 다니던 때였습니다.
어느 날 집에 돌아온 아이 얼굴을 보는데 상처가 나 있었습니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얼굴이 왜 그래?”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때렸어?”
다시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아이 얼굴에는 분명 상처가 있는데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으니 부모인 제 머릿속에서는 별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유치원에서 계속 맞고 다니는 건가?’
‘무서워서 말을 못 하는 건가?’
‘오늘 처음 있었던 일이 아닌 건 아닐까?’
저희 집에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지키게 했던 원칙이 하나 있었습니다.
화가 나더라도 사람을 때리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 역시 어릴 때 동생들과 싸우면서 컸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에게는 형제끼리든 친구끼리든 폭력을 쓰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말하던 제가 아들 얼굴에 난 상처를 보는 순간 정반대의 말을 해버렸습니다.
“맞고만 있으면 어떡해. 누가 때리면 너도 때려!”
그때는 그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누군가가 우리 아이를 때렸다는 생각에 속이 상했던 겁니다.
그런데 아들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결국 저는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누가 우리 아이를 때렸는지 알아보러 유치원에 갔습니다
유치원에 가는 동안 저는 당연히 우리 아이가 누군가에게 맞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얼굴에 상처까지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가 일방적으로 맞은 게 아니에요. 둘이 서로 싸웠어요.”
순간 당황했습니다.
“둘이요?”
알고 보니 우리 아들도 친구를 때렸습니다.
다만 차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우리 아들은 얼굴을 맞아서 상처가 눈에 보였고, 상대 아이는 다른 곳을 맞아 겉으로 표시가 나지 않았던 겁니다.
게다가 상대 아이는 싸우면서 울었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집에서 제가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맞고만 있지 말고 너도 때려.”
조금 민망했습니다.
우리 아이가 일방적으로 맞았다고 생각하고 한 말이었는데, 알고 보니 두 아이는 이미 서로 싸운 뒤였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아들이 왜 집에서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저희 집에서는 평소부터 때리는 행동을 금지했습니다. 자기도 친구와 싸웠으니 부모에게 이야기하면 혼날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당시 어린 아들이 속으로 정확히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저는 얼굴에 보이는 상처 하나만 보고 이미 사건의 결론까지 내려버렸습니다.
요약: 아이에게 상처가 있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맞았다고 먼저 판단하기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결국 두 아이와 부모가 한자리에서 만났습니다
유치원에서는 두 아이의 싸움을 그냥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두 아이와 양쪽 부모가 함께 만나는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상대 아이 부모님은 우리 아들의 얼굴에 상처가 난 것에 대해 사과하셨습니다.
저희도 이미 두 아이가 서로 싸웠다는 상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사과를 받아들였습니다.
아이들도 서로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싸우지 말고 친하게 지내자고 이야기하면서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됐습니다.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습니다.
그런데 부모인 저에게는 그날 일이 꽤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만약 제가 아들 얼굴의 상처만 보고 상대 아이를 나쁜 아이로 단정했다면 어땠을까요?
작은 아이들 싸움이 부모들 사이의 감정싸움으로 커졌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애들이 싸울 수도 있지”라며 아무것도 확인하지 않았다면 아들이 왜 말을 하지 않았는지도 생각해보지 못했을 겁니다.
그날 알았습니다.
아이들 싸움에서는 눈에 보이는 결과보다 그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요.
“누가 때렸어?”보다 먼저 물었어야 했던 말
이 일을 겪고 난 뒤 가장 마음에 남은 것은 아들이 처음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상처를 발견하자마자 물었습니다.
“누가 때렸어?”
지금 생각하면 그 질문 속에는 이미 답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는 맞았고, 누군가가 때렸다.’
하지만 실제로는 두 아이가 서로 싸웠습니다.
차라리 이렇게 물어봤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어?”
“처음부터 이야기해 줄래?”
누가 잘못했는지를 먼저 정하지 않고 아이가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기다리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
집에서 폭력을 금지하는 원칙은 지금도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친구든 형제든 화가 난다고 사람을 때리는 행동을 허용할 수는 없으니까요.
다만 아이에게 규칙만 가르쳐서는 부족하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규칙을 어겼을 때도 부모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네가 잘못한 일이 있어도 먼저 이야기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볼게.”
이런 믿음을 주는 것도 필요했습니다.
요약: 아이에게 잘못하지 않는 법만 가르치는 것만큼, 잘못했을 때 숨기지 않고 부모에게 이야기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자주 궁금해하는 질문
Q. 아이가 상처를 입고 왔다면 바로 유치원이나 학교에 확인해야 할까요?
A. 아이의 설명만으로 상황을 알기 어렵거나 눈에 띄는 상처가 있다면 선생님에게 당시 상황을 확인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누가 우리 아이를 때렸습니까?”라고 결론부터 내리기보다 “아이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라고 사실부터 확인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Q. 아이에게 “맞으면 너도 때려”라고 말하는 것은 어떨까요?
A. 저희도 당시에는 걱정되는 마음에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상황을 알기도 전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이라면 맞서 때리라고 하기보다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선생님이나 주변 어른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먼저 이야기할 것 같습니다.
마무리
아들 얼굴에 난 상처를 처음 발견했을 때 저는 확신했습니다.
‘우리 아이가 맞고 왔다.’
그래서 누가 그랬는지 알아보려고 유치원까지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알게 된 사실은 제가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이야기와 달랐습니다.
우리 아들도 친구와 싸웠습니다.
우리 아이는 얼굴에 상처가 남았고 상대 아이는 겉으로 상처가 보이지 않았을 뿐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아이들 사이에 문제가 생겼을 때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누가 잘못했는지 먼저 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가끔 그날 제가 아들에게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맞으면 너도 때려.”
평소에는 그렇게 폭력을 쓰면 안 된다고 가르쳐놓고, 내 아이가 맞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부모인 저도 마음이 먼저 움직였던 겁니다.
부모도 아이와 함께 배우는 것 같습니다.
그날 아들이 얼굴에 작은 상처를 입고 돌아오지 않았다면 저도 몰랐을 겁니다.
아이 편을 들어주는 것과 아이가 한 행동까지 무조건 옳다고 믿어주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요.
그래서 지금이라면 아들 얼굴의 상처를 보고 가장 먼저 이렇게 물어볼 것 같습니다.
“누가 그랬어?”가 아니라,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처음부터 이야기해 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