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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입에서 처음 욕이 튀어나온 날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순간 귀를 의심했습니다.
‘내가 잘못 들었나?’
한 번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분명했습니다. 아이가 욕을 한 겁니다.
머릿속에서는 곧바로 여러 생각이 지나갔습니다.
‘친구한테 배웠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내가 아이를 잘못 키우고 있는 건가?’
그리고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그런 말 어디서 배웠어?”
지금 생각하면 참 이상합니다.
아이의 욕은 몇 초였는데, 제 잔소리는 몇 분이나 계속됐습니다.
욕이 왜 나왔는지는 묻지 않았습니다. 욕을 했다는 사실 하나에만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더 당황스러운 일은 그다음부터였습니다.
제가 그렇게 화를 냈으니 아이가 다시는 안 할 줄 알았습니다.
반대였습니다.
며칠 지나자 또 나왔습니다.
그때 처음 궁금해졌습니다.
‘혹시 내가 욕을 없애려고 한 행동이 오히려 욕을 더 특별한 말로 만들어준 건 아닐까?’

아이의 욕보다 부모의 반응이 더 커질 때
아이들은 말을 참 묘하게 배웁니다.
어른이 열 번 가르쳐준 좋은 표현보다 친구에게 우연히 들은 이상한 단어 하나를 더 빨리 기억하기도 합니다.
특히 어른이 깜짝 놀라는 말은 더 재미있습니다.
한마디 했는데 엄마 얼굴이 변하고, 아빠 목소리가 커지고, 하던 일이 모두 멈춥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대단한 단어를 발견한 셈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아이가 욕을 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제가 놓쳤던 것은 욕에도 이유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린아이는 단어의 정확한 의미도 모르면서 소리나 주변 반응이 재미있어서 따라 할 수 있습니다.
조금 큰 아이는 다릅니다.
짜증이 났을 때, 억울할 때,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을 때, 혹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한꺼번에 터뜨리는 수단으로 욕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저는 질문을 바꿨습니다.
“왜 그런 나쁜 말을 했어?”
대신,
“오늘 무슨 일 있었어?”
라고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놀랍게도 이 한 문장이 전혀 다른 이야기를 끌어냈습니다.
욕을 막는 대신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봤습니다
한동안 관찰하다 보니 아이가 아무 데서나 욕을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부모 앞에서는 오히려 조심했습니다.
그런데 친구와 이야기하거나 게임을 할 때는 달랐습니다.
처음에는 이것도 괘씸했습니다.
‘하면 안 되는 줄 알면서 몰래 하는 거잖아.’
하지만 조금 다르게 보니 또 다른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이에게는 친구들과 있을 때 사용하는 표현이 있었고, 그 안에는 친밀감을 확인하려는 말도 섞여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욕을 허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욕만 붙잡고 아이를 혼내다 보면 욕이 나오기 직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놓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조금 이상한 시간이 생겼습니다.
저는 그것을 ‘야자타임’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무 때나 막말을 하자는 시간이 아니라, 평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부모와 아이가 조금 편하게 꺼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가 어색해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시작했습니다.
“아, 아빠 오늘 진짜 짜증 났다.”
일부러 평소보다 편한 표현을 썼습니다.
그러자 아이 얼굴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진짜 이렇게 말해도 되나?’ 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잠시 후 아이가 한마디를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마디.
처음에는 장난처럼 시작했는데 조금 지나자 뜻밖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친구에게 서운했던 일, 학교에서 억울했던 일, 제가 무심코 했던 말 때문에 기분 나빴던 일도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아빠가 그때 한 말, 나 진짜 싫었어.”
순간 반박하고 싶었습니다.
‘그건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닌데.’
입 밖으로 거의 나올 뻔했습니다.
그런데 참았습니다.
그리고 그냥 말했습니다.
“그랬구나. 아빠가 그렇게 보였구나.”
그날 제가 배운 것은 욕을 없애는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방법이었습니다.
부모는 아이의 감정을 빨리 고쳐주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래.”
“너도 잘못한 게 있잖아.”
틀린 말은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감정을 쏟아내는 순간에는 정답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이 있구나.’
라는 경험이었습니다.
욕을 금지했을 때보다 이상하게 욕이 줄었습니다
재미있는 변화는 그 뒤에 나타났습니다.
저는 욕을 완전히 허용한 적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욕이나 모욕적인 표현에는 분명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화나는 건 괜찮아. 하지만 사람을 공격하는 말은 안 돼.”
대신 감정 자체를 혼내지는 않으려고 했습니다.
“오늘 진짜 화났구나.”
“친구 때문에 열받았구나.”
“아빠한테도 서운했어?”
그리고 욕 대신 사용할 수 있는 말을 같이 찾아봤습니다.
“짜증 나.”
“억울해.”
“나 지금 혼자 있고 싶어.”
“그 말 듣기 싫어.”
“오늘 학교 진짜 힘들었어.”
예전 같으면 거친 말 한마디로 끝났을 감정이 조금씩 문장으로 길어졌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욕을 하지 않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욕 없이도 자기감정을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욕을 한 번 했다고 ‘문제 있는 아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의 욕설은 성장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친구에게 몇 마디를 배워 사용했다고 곧바로 ‘문제 있는 아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욕을 성장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가볍게 넘길 필요도 없습니다.
욕설이 갑자기 잦아지거나 특정 사람을 지속적으로 모욕하고, 친구 관계나 학교생활에 문제가 생긴다면 욕 자체보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 번의 욕이 아니라 그 전후로 아이에게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보는 것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목표가 단순했습니다.
‘아이에게서 욕을 없애자.’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목표가 달라졌습니다.
‘이 아이가 화나고 억울할 때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 있게 하자.’
“또 했어?”
“하지 말랬지?”
이렇게 반응할 때는 아이의 욕만 들렸습니다.
하지만,
“지금 많이 화났구나.”
“무슨 일이 있었어?”
라고 묻기 시작하자 욕 뒤에 있던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짜증 나.”
“억울해.”
“오늘 학교에서 힘들었어.”
욕 한마디로 끝났던 감정이 말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고쳐야 했던 것은 아이의 입만이 아니었습니다.
아이의 말보다 먼저 반응하던 제 태도도 함께 바뀌어야 했습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부모도 실수합니다. 저 역시 아이의 말에 화부터 내고 뒤늦게 후회한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그래도 다시 이야기하면 됩니다.
아이의 욕을 처음 들었던 날에는 그 단어만 크게 보였습니다.
지금은 그 말 뒤에 무엇이 있는지를 먼저 보려고 합니다.
어쩌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욕을 한 번도 하지 않는 완벽함보다, 화나고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을 다른 말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