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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잘 야단치는 방법, 화내는 것과 혼내는 것은 다르다

think80056 2026. 8. 22. 17:58

목차


    아이를 키우다 보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분명 좋게 말했습니다.
    “이제 그만하고 정리하자.”
    한 번 말하고 두 번 말했는데도 아이가 듣지 않으면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집니다.
    “엄마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그 순간에는 아이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뿐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입을 꾹 다물거나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리면 제 마음도 편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너무 심하게 말했나?’
    그러다가도 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잘못한 걸 그냥 넘어갈 수도 없잖아.’
    아이를 키우면서 저는 이 사이에서 자주 흔들렸습니다. 화를 내고 나면 미안하고, 미안해서 너무 부드럽게 말하면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생각을 조금 바꿔봤습니다.
    아이에게 화를 전혀 내지 않는 부모가 되는 것보다, 잘못했을 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것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그때부터 아이를 야단칠 때 제가 하는 말과 행동부터 조금씩 바꿔보기 시작했습니다.

    길게 야단칠수록 아이는 더 듣지 않았다

    예전에는 아이가 잘못하면 충분히 설명해야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를 이야기하다가 지난번 잘못까지 꺼내곤 했습니다.
    “지난번에도 그랬잖아.”
    “엄마가 그때 뭐라고 했어?”
    “너는 왜 항상 똑같아?”
    처음에는 아이도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 길어지면 어느 순간 표정이 멍해졌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지금 자기 행동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엄마 말이 빨리 끝나기만 기다리는 걸까?’
    그래서 말을 줄여봤습니다.
    아이가 화가 나 장난감을 던졌다면,
    “화난 건 알아. 하지만 장난감을 던지면 안 돼. 사람이 다칠 수 있어.”
    거기서 끝냈습니다.
    그리고 “너는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처럼 아이 자체를 평가하기보다 지금 잘못한 행동 하나만 이야기하려고 했습니다.
    “넌 왜 이렇게 버릇이 없어.”가 아니라
    “화가 나도 그런 말을 하는 건 안 돼.”
    라고 말하는 식입니다.
    해보니 야단은 길다고 강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짧고 분명하게 말했을 때 아이도 자신이 무엇 때문에 혼나는지 이해하기 쉬워했습니다.
    부모가 고쳐주고 싶은 것은 아이 자체가 아니라 아이의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저 역시 자꾸 기억하려고 합니다.

    화를 냈다면 사과와 훈육은 따로 한다

    물론 매번 침착하게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피곤한 날도 있고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결국 큰소리가 나기도 했습니다. 저도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나서 후회한 적이 있습니다.
    그럴 때 고민됐던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부모가 먼저 사과하면 아이가 나를 우습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지만 생각해 보니 아이에게는 잘못하면 사과하라고 가르치면서 부모는 절대로 사과하지 않는 것도 이상했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잘못한 것과 아이가 잘못한 것을 분리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동생을 때렸는데 제가 지나치게 큰소리를 냈다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까 엄마가 너무 크게 소리친 건 미안해. 하지만 네가 동생을 때린 행동은 잘못한 거야.”
    제가 소리친 것을 사과한다고 해서 아이가 동생을 때린 행동까지 괜찮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아이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해서 부모가 지나치게 화낸 것까지 정당해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나누어 생각하니 저도 훨씬 편해졌습니다.
    어른이라고 항상 옳은 것은 아니고, 잘못했다면 부모도 사과할 수 있다는 것을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지켜야 할 기준은 그대로 알려줄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과와 훈육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둘을 구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 고민됐던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부모가 먼저 사과하면 아이가 나를 우습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지만 생각해보니 아이에게는 잘못하면 사과하라고 가르치면서 부모는 절대로 사과하지 않는 것도 이상했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잘못한 것과 아이가 잘못한 것을 분리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동생을 때렸는데 제가 지나치게 큰소리를 냈다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까 엄마가 너무 크게 소리친 건 미안해. 하지만 네가 동생을 때린 행동은 잘못한 거야.”
    제가 소리친 것을 사과한다고 해서 아이가 동생을 때린 행동까지 괜찮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아이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해서 부모가 지나치게 화낸 것까지 정당해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나누어 생각하니 저도 훨씬 편해졌습니다.
    어른이라고 항상 옳은 것은 아니고, 잘못했다면 부모도 사과할 수 있다는 것을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지켜야 할 기준은 그대로 알려줄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과와 훈육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둘을 구분하는 것이었습니다.

    야단친 뒤에는 정답보다 아이가 생각하게 한다

    예전에는 야단을 친 뒤에도 제가 계속 답을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다음부터 그러면 안 돼.”
    “친구한테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야.”
    그런데 어느 날부터 제가 말하기 전에 아이에게 먼저 물어봤습니다.
    “아까 왜 그렇게 화가 났어?”
    “그때 어떤 기분이었어?”
    “상대방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다음에 또 화가 나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처음부터 아이가 멋진 답을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몰라.”
    라고 할 때도 있었습니다.
    어린아이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는 것도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나이에 따라 질문의 수를 줄였습니다.

    어릴 때는
    “화났어?”
    “속상했구나. 그래도 때리면 안 돼.”
    정도만 말해도 충분했습니다.
    조금 큰 아이에게는 “다음에는 어떻게 해볼까?”라는 질문을 하나 더 해볼 수 있었습니다.
    부모가 모든 답을 알려주기보다 아이가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한 번 생각해 보도록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바로 답하지 못하더라도 잠깐 기다려봤습니다. 그러다 아이가 자기 입으로 방법을 이야기하는 순간이 조금씩 생겼습니다.
    아이를 잘 야단친다는 것은 큰소리로 아이를 이기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잘못한 행동을 모두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아이를 키우면서 기억하려고 하는 것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잘못한 행동은 짧고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아이 자체를 공격하지 않는 것. 부모가 지나치게 화를 냈다면 그 부분은 사과하되 잘못된 행동에 대한 기준은 그대로 알려주는 것.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이가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한 번 주는 것입니다.
    “아까 엄마가 소리친 건 미안해. 하지만 사람을 때리는 건 안 돼. 다음에 화가 나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 정도면 충분할 때가 많았습니다.
    저 역시 지금도 아이를 야단친 뒤 후회할 때가 있습니다. 매번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한 번 화냈다고 모든 훈육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시 아이에게 다가가 이야기하면 됩니다.
    어쩌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한 번도 화내지 않는 완벽한 부모가 아니라, 화가 난 뒤에도 다시 대화를 시작할 줄 아는 부모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