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가족과 함께 캐리비안 베이에 갔습니다. 아이들은 아침부터 신이 나서 물속을 뛰어다녔고, 저도 물놀이를 하니 더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참 뒤 딸아이가 물 밖으로 나오더니 천천히 제 앞으로 걸어왔습니다.
“아빠, 어지러워.”
처음에는 너무 많이 놀아서 지친 줄 알았습니다. 조금 쉬면 괜찮아질 거라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아이의 얼굴을 보니 평소와 달랐습니다. 말하는 목소리에도 힘이 없었습니다.
물속에 있었으니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
그날은 햇볕이 강했고 사람이 많았습니다. 아이들은 물속과 물 밖을 계속 오가며 놀았습니다. 물에 들어가 있으니 몸이 뜨겁다는 느낌을 덜 받았고, 아이도 목이 마르다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이가 알아서 물을 마시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가방에는 물이 있었지만 놀고 있는 아이를 불러 세워 자주 마시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딸이 어지럽다고 했을 때도 처음에는 “조금 앉아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자리에 앉은 뒤에도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얼굴도 평소보다 창백해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단순히 놀다가 지친 것만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만 더 놀자”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아프다고 하면 부모는 마음이 급해집니다. 저도 무엇부터 해야 할지 잠시 머리가 하얘졌습니다.
가까이 있던 안전요원이 아이의 상태를 살펴보더니 더운 날 오래 움직이면 물속에서도 몸이 지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선 아이를 그늘지고 시원한 곳으로 데려가 쉬게 했습니다.
젖은 겉옷을 느슨하게 해주고, 아이가 제 말에 제대로 대답하는지 살펴봤습니다. 정신이 또렷한 것을 확인한 뒤 물을 조금씩 마시게 했습니다.
딸은 쉬면서도 물놀이하는 사람들을 바라봤습니다.
“아빠, 조금 있다가 다시 놀아도 돼?”
평소 같으면 조금만 더 쉬었다가 놀자고 했을 것입니다. 입장료를 내고 멀리까지 왔으니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날은 아이의 표정을 보고 더 놀자는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은 네 몸이 쉬고 싶다고 말하는 것 같아. 괜찮아질 때까지 아빠랑 여기 있자.”
딸은 아쉬워했지만 더 들어가겠다고 조르지는 않았습니다.
아이가 하는 말을 가볍게 듣지 않기로 했습니다
잠시 쉬고 물을 마시자 아이의 얼굴에 조금씩 생기가 돌아왔습니다. 다행히 큰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저는 그날 제 판단이 늦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아이가 “어지러워”라고 말했을 때 저는 먼저 아이의 얼굴을 살핀 것이 아니라, 많이 놀아서 그런 것이라고 이유부터 정했습니다.
아이들은 몸이 이상해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힘들어”, “배가 이상해”, “머리가 빙빙 돌아”처럼 짧게 말할 뿐입니다. 놀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아픈 것을 참기도 합니다.
그날 이후 저는 아이가 몸이 불편하다고 말하면 바로 괜찮다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어디가 어떻게 이상해?”
“언제부터 그랬어?”
“지금 앉아 있을 수 있어?”
이렇게 짧게 물어보고 얼굴색과 말투, 걷는 모습부터 살펴봅니다. 부모가 당황해서 여러 질문을 한꺼번에 하면 아이도 제대로 대답하기 어려울 수 있어서 한 가지씩 천천히 묻습니다.
그날 이후 물놀이 준비가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수영복과 수건, 간식만 챙기면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아이마다 물병을 하나씩 챙깁니다.
아이들이 목마르다고 말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한동안 놀고 나면 그늘로 불러 물을 마시게 합니다. 아이들은 처음에 “안 목말라”라며 더 놀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잔소리하듯 말하는 대신 함께 물을 마셨습니다.
“아빠도 마실 테니까 우리 잠깐만 쉬자.”
부모가 먼저 앉아 물을 마시니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따라왔습니다. 간식을 먹거나 사진을 확인하는 짧은 시간을 쉬는 시간으로 만들었더니 놀이가 끊긴다는 불만도 줄었습니다.
한낮에 햇볕이 너무 강하면 물속에 있더라도 오래 놀지 않게 했습니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노는 것보다 잠깐씩 쉬고 다시 노는 편이 아이들의 표정도 훨씬 좋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놀아야 한다는 생각도 버렸습니다. 아이가 축 늘어지거나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면 계획보다 일찍 나올 수 있다고 가족끼리 미리 이야기했습니다.
부모가 꼭 기억해 둔 한 가지
그날 이후 저는 더운 날 아이가 어지럽거나 힘이 없다고 하면 우선 시원한 곳에서 쉬게 하고 상태를 살펴봅니다. 아이가 또렷하게 대답할 수 있을 때만 물을 조금씩 마시게 합니다.
반대로 아이가 불러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거나, 갑자기 쓰러지거나, 말과 행동이 평소와 확실히 다르다면 기다리면서 지켜볼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바로 119에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의식이 없는 아이에게 억지로 물을 먹여서는 안 된다는 것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병 이름을 모두 외우는 것보다 아이의 평소 모습과 다른 변화를 빨리 알아보는 것이 부모에게는 더 현실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이제는 아이의 표정을 먼저 봅니다
캐리비안 베이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딸은 금방 잠들었습니다. 잠든 얼굴을 보면서 아침에 신나게 뛰어다니던 모습과 힘없이 걸어오던 모습이 번갈아 생각났습니다.
조금만 늦게 알아차렸다면 어땠을까 싶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물놀이를 하고 있으니 더위와 상관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도 잘못이었습니다.
지금도 여름에 외출하면 아이들은 빨리 놀러 가자고 재촉합니다. 저도 매번 완벽하게 준비하지는 못합니다. 물병을 차에 두고 내려 다시 가지러 가는 날도 있고, 쉬자는 약속을 잊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예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 있습니다. 아이가 “아빠, 힘들어”라고 말하면 “조금만 참아”라고 먼저 대답하지 않습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아이의 얼굴부터 봅니다.
그날 딸아이가 알려준 것은 어려운 병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도 갑자기 지칠 수 있고, 아이가 건네는 짧은 한마디를 부모가 가볍게 넘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