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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까지 웃고 있던 아이가 갑자기 표정이 굳을 때가 있습니다. 별것 아닌 말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짜증을 내기도 하고,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리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저도 아이의 감정을 따라갔습니다. 아이가 짜증을 내면 저도 기분이 상했고, 말투가 거칠어지면 “왜 엄마한테 그렇게 말해?”라는 말부터 나왔습니다. 그러면 아이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 저 역시 화가 났습니다.
나중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의 감정이 흔들릴 때마다 나까지 같이 흔들리면 결국 둘 다 힘들어지는 것 아닐까. 아이의 기분을 당장 고쳐놓으려고 하기보다, 조금 기다려보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별말도 안 했는데 아이 표정이 달라질 때가 있었습니다
사춘기가 되면서 가장 낯설었던 것 중 하나는 아이의 기분이었습니다.
아침에는 괜찮아 보였는데 학교에서 돌아오면 말수가 확 줄어 있기도 하고, 평소 같으면 웃고 넘어갈 말을 유난히 예민하게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친구랑 싸웠어?”
“엄마가 뭐 잘못 말했어?”
저도 이유를 알아내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자꾸 물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말하기 싫은 순간에는 질문을 하나 더 할수록 대화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짜증만 하나씩 더 늘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 앞에서 아이의 행동을 지적하거나, 아이가 민망해하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예상보다 훨씬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어릴 때는 웃고 지나가던 이야기도 어느 순간부터는 “그 얘기하지 마”라며 싫어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정도 가지고 왜 저렇게 예민하지?’ 싶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어른도 남들 앞에서 자신의 실수나 부족한 점을 이야기하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하물며 한창 친구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아이는 더 크게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순간에 바로 “그게 뭐가 창피하다고 그래?”라고 판단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별일이 아니어도 아이에게는 큰일일 수 있으니까요.
이런 것이 사춘기 아이들이 느끼는 수치심과도 연결되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꼭 큰 잘못을 했을 때만 창피한 것이 아니라, 친구보다 못하는 것 같을 때, 부모에게 어린아이 취급을 받았다고 느낄 때, 남들 앞에서 지적받았을 때도 아이 마음에는 꽤 크게 남을 수 있습니다.
그걸 알고 나니 아이가 갑자기 화를 낼 때 ‘왜 저러지?’만 생각하기보다 ‘혹시 지금 아이가 창피하거나 자존심이 상한 건 아닐까?’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됐습니다.
따라가서 해결하려고 할수록 더 멀어질 때도 있었습니다
아이가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면 부모 마음도 편하지 않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바로 따라가고 싶었습니다.
“왜 그러는데?”
“말을 해야 알지.”
“문은 왜 그렇게 닫아?”
하나라도 해결하고 나와야 제 마음도 편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화가 잔뜩 난 상태에서 이유를 묻는다고 제대로 된 대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따라가면 아이는 더 방어적으로 변하고, 결국 처음에 무엇 때문에 기분이 나빴는지는 사라지고 서로 말투 때문에 싸우게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꼭 그 자리에서 해결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른도 화가 났을 때 누군가 옆에서 계속 “왜 화났어? 말해봐”라고 따라다니면 더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조금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있고, 마음이 가라앉은 다음에야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아이도 마찬가지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혼자 있고 싶어 하는 것 같으면 조금 기다려봤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모른 척한 것은 아닙니다.
“알았어. 좀 쉬어.”
“말하고 싶을 때 이야기해.”
그 정도만 말하고 물러났습니다.
때로는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챙겨두기도 했습니다. 간식 하나가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말을 하지 않아도 ‘화가 났다고 해서 엄마가 너를 밀어낸 것은 아니야’라는 마음은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아이가 거실에 나오기도 했습니다. 어떤 날에는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전 같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날에는 답답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꼭 그날 모든 문제의 답을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다려주는 것도 부모가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가 아닐까요.
아이의 감정이 흔들릴수록 저는 바위처럼 있어보려고 했습니다
사춘기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가 바위처럼 있어야 한다’는 말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바위라는 말이 무뚝뚝하고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아이가 화를 내든 말든 아무 반응도 하지 말라는 뜻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는 바위는 조금 달랐습니다.
아이가 흔들릴 때 같이 흔들리지 않는 것.
아이가 “몰라!”라고 한다고 저도 “너는 왜 맨날 그런 식이야!”라고 받아치지 않는 것.
오늘 아이 기분이 좋지 않다고 해서 ‘우리 사이가 잘못됐나?’라고 너무 빨리 결론 내리지 않는 것.
그게 제가 생각하는 바위에 더 가까웠습니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았습니다.
아이에게 날카로운 말을 들으면 부모도 상처를 받습니다. 저도 참다가 화를 낸 적이 있고, 나중에 ‘그냥 조금 기다릴걸’ 하고 후회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완벽하게 흔들리지 않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이가 크게 흔들리는 순간에 둘 중 한 사람이라도 조금 덜 흔들릴 수 있다면 싸움이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다려준다고 해서 잘못된 행동까지 받아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화가 날 수는 있지만 물건을 던지거나 가족에게 심한 말을 하는 행동까지 괜찮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럴 때는 감정이 조금 가라앉은 뒤에 이야기하는 편이 나았습니다.
“화난 건 이해해. 그런데 문을 그렇게 세게 닫거나 사람한테 상처 주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감정과 행동을 따로 생각해보니 저도 말하기가 조금 쉬워졌습니다.
아이의 기분까지 부모가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 어디까지는 괜찮고 어디부터는 안 되는지는 알려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사춘기 아이에게 필요한 부모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의 감정이 지나갈 때까지 자리를 지켜주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Q. 아이가 방문을 닫고 들어가면 그냥 놔두는 게 맞을까요?
저는 무조건 내버려두는 것과 잠시 기다려주는 것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혼자 있고 싶어 한다면 시간을 주되, “필요하면 엄마한테 이야기해”라는 신호 정도는 남겨둘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가라앉은 뒤에도 지켜야 할 행동에 대해서는 다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Q. 계속 기다려주기만 하면 아이가 부모를 만만하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저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기다려준다는 것을 모든 행동을 허용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감정이 격한 순간에는 싸움을 키우지 않고, 나중에 서로 진정됐을 때 지켜야 할 선을 이야기하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바로 혼내는 것만이 부모의 기준을 보여주는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아이의 폭풍을 제가 없애줄 수는 없었습니다
사춘기 아이의 감정이 갑자기 변할 때마다 예전에는 이유를 찾아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내가 말을 잘못했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친구와 싸웠나. 부모니까 궁금하고 걱정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모든 감정에 바로 답을 찾아줘야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이도 자기 마음을 모를 때가 있고, 그냥 기분이 좋지 않은 날도 있고,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요즘 제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이의 감정을 빨리 없애주는 것보다, 그 감정 때문에 부모와 아이의 관계까지 같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방문을 닫았다고 바로 따라가지 않아도 되고, 오늘 대화를 못 했다고 관계가 멀어진 것도 아닙니다.
조금 기다렸다가 다시 밥을 같이 먹고, 평소처럼 간식을 건네고, 아이가 말을 걸어오면 들어주는 것.
저는 그런 평범한 행동들이 오히려 아이에게 “그래도 여기는 내 편이 있는 곳”이라는 느낌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아이마다 다릅니다. 바로 이야기를 해야 마음이 풀리는 아이도 있을 것이고, 한참 혼자 있어야 하는 아이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어느 한 가지 방법이 모든 사춘기 아이의 정답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아이가 감정적으로 흔들릴 때마다 부모가 반드시 그 감정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리고 때로는 해결보다 기다림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한 번 생각해 볼 만한 것 같습니다.
아이의 감정이 폭풍처럼 몰려오는 날,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나요? 바로 따라가 이야기를 나누는 편인가요, 아니면 아이가 먼저 나올 때까지 조금 기다려주는 편인가요?
저도 아직 어느 쪽이 언제나 맞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 아이에게 맞는 거리를 조금씩 찾아가는 것, 그것도 사춘기를 함께 지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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