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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아들은 물약이나 가루약은 잘 먹었지만 알약만큼은 어려워했습니다. 물과 함께 입에 넣고 한참 머금고 있다가 결국 뱉어냈습니다. 식탁 위에 물컵을 놓고 마주 앉으면 약 하나를 두고 긴 실랑이가 시작됐습니다.
“물하고 같이 꿀꺽하면 되잖아.”
제가 쉽게 말할수록 아이의 표정은 어두워졌습니다. 여섯 살 여동생은 알약도 곧잘 먹었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두 아이를 비교했습니다. 하지만 동생이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아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약을 먹는 시간에 자신이 못하는 것까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물컵은 비었는데 알약은 그대로였습니다
아들은 약을 먹기 전에 물부터 여러 번 마셨습니다. 그러고는 손바닥 위에 놓인 알약을 들여다봤습니다. 입에 넣은 뒤에도 바로 넘기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약의 쓴맛이 느껴지면 얼굴을 찌푸리고 뱉었습니다.
“왜 또 뱉었어? 조금만 참으면 넘어가는데.”
“넘기려고 했는데 안 넘어가.”
저는 아이가 충분히 노력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물을 더 마셔보라고 하고, 이번에는 꼭 삼키라고 재촉했습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손에 쥔 약을 입 가까이 가져갔다가 다시 내려놓았습니다.
나중에 차분하게 물어보니 아이가 무서워하는 것은 쓴맛만이 아니었습니다.
“목에 걸리면 어떡해?”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제가 너무 쉽게 설명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게는 잠깐 삼키면 끝나는 일이었지만, 아이에게는 목에 걸릴지도 모르는 물건을 넘기는 일이었습니다. “괜찮아”라는 말만 반복한다고 그 걱정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동생도 먹는데”라는 말이 남았습니다
어느 날 여동생이 먼저 약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아들은 여전히 물컵을 앞에 놓고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답답한 마음에 말했습니다.
“동생도 먹는데 오빠가 이걸 못 먹으면 어떡해.”
아들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잠시 뒤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나도 먹고 싶은데 안 되는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미안했습니다. 저는 약을 잘 먹게 하려고 한 말이었지만, 아이는 동생보다 못한다는 뜻으로 들었을 것입니다. 약을 삼키는 것만으로도 긴장하는 아이에게 오빠답게 해야 한다는 부담까지 더했던 셈입니다.
그 뒤로는 약 먹는 자리에서 동생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여동생에게 오빠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응원하라고 부탁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 앞에서 성공해야 하는 일이 되면 아이가 더 부담스러워할 것 같았습니다.
둘만 있을 때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엄마가 동생하고 비교해서 속상했지?”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못 먹는다고 혼내지 않을게. 무엇이 힘든지부터 같이 알아보자.”
그날 바로 알약을 삼킨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아이가 제 앞에서 자신의 걱정을 조금 더 자세히 말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중간에 끊지 않고 들었습니다.
약 먹는 시간을 시험처럼 만들지 않았습니다
예전에는 물컵을 내려놓자마자 “자, 빨리 먹자”라고 했습니다. 약을 먹고 나면 할 일이 많았고, 아이가 시간을 끌면 저도 조급해졌습니다. 그러나 시계를 보며 재촉할수록 아이는 더 굳어졌습니다.
그래서 먼저 식탁 위를 정리하고 텔레비전을 껐습니다. 가족들이 오가며 한마디씩 보태는 대신 제가 옆에 앉았습니다. 아이가 알약을 바라보는 동안에도 곧바로 손을 잡거나 입을 벌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순간이 제일 무서워?”
“입에 넣고 넘기려고 할 때.”
“쓴맛도 싫고, 목에 걸릴까 봐 걱정되는 거구나.”
아이가 말한 내용을 되짚어주자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제야 저는 ‘왜 못 먹을까’보다 ‘어디에서 막히는 걸까’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렇다고 필요한 약을 마음대로 건너뛰거나 집에서 무작정 연습을 반복하지는 않았습니다. 알약을 먹기 어렵다는 점을 알리고, 아이가 복용할 수 있는 약의 형태와 먹는 방법을 먼저 확인했습니다. 작게 만들면 쉬울 것 같다는 이유로 알약을 임의로 부수거나 가루로 바꾸지도 않았습니다.
작은 성공을 쌓는다는 생각은 참고하되, 약 먹는 일을 가족끼리 정한 도전 과제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정해진 약을 안전하게 먹는 것이지, 다른 아이보다 빨리 알약을 삼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공한 날보다 실패한 날의 말을 바꿨습니다
아들이 알약을 처음 삼킨 날에는 저도 기뻤습니다. 아이는 입을 벌려 약이 없는 것을 보여주고는 웃었습니다.
“엄마, 넘어갔어.”
저는 무심코 “이제 할 수 있네. 다음부터는 잘 먹겠네”라고 말하려다가 멈췄습니다. 한 번 성공했다고 다음번에도 똑같이 쉬울 것이라고 단정하면, 다시 어려워하는 날에는 아이가 실패한 기분을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신 그날 아이가 한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무서웠는데도 네가 힘든 부분을 말해줬구나.”
“네게 맞는 방법을 찾아보니까 조금 편해졌네.”
이후에도 약을 앞에 놓고 망설이는 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번에는 먹었잖아”라고 따지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긴장한 이유를 묻고, 확인해둔 복용 방법에 따라 도왔습니다.
뱉어낸 뒤에도 바로 새 약을 건네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먹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다시 먹이는 문제는 부모가 짐작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그때 필요한 확인을 하고 넘어갔습니다.
아이에게 남기고 싶은 것은 한 번의 성공보다, 어려운 일이 생겨도 엄마에게 말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잘 먹은 날만 칭찬하고 못 먹은 날에는 한숨을 쉬면 그 믿음이 생기기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동생은 되는데 나는 안 돼”라는 말을 내려놓았습니다
아들은 한동안 약 이야기만 나오면 동생부터 떠올렸습니다.
“동생은 나보다 어린데 잘 먹잖아.”
예전 같으면 그러니까 너도 할 수 있다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이제는 다른 말을 했습니다.
“동생이 잘 먹는 것하고 네가 어려운 것은 따로 생각해도 돼.”
아이를 위로하려고 동생보다 잘하는 것을 찾아 나열하지도 않았습니다. 알약을 잘 먹지 못한다고 해서 다른 장점을 증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저 지금 어려워하는 일이 하나 있고, 그 일에 맞는 도움을 찾으면 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가장 서둘렀던 것은 알약을 먹이는 일만이 아니었습니다. 열 살이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생각, 오빠라면 동생보다 잘해야 한다는 기대가 함께 있었습니다. 아이는 약을 먹기 전에 그 기대부터 견뎌야 했습니다.
지금도 모든 약을 편하게 먹는 것은 아닙니다. 낯선 크기나 모양을 보면 다시 걱정합니다. 그래도 아무 말 없이 입에 머금고 버티는 대신 “이건 조금 무서워”라고 알려줍니다. 저는 그 말이 나오면 혼낼 이유를 찾는 대신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생각합니다.
저희 집에서 달라진 것은 알약 하나를 삼키는 모습만이 아니었습니다. 동생과 비교하던 자리가 사라지고, 아들이 자신의 어려움을 설명하는 자리가 생겼습니다. 물컵 앞에서 긴장한 얼굴로 앉아 있던 아이가 이제는 도움을 요청합니다.
“엄마, 이번에도 같이 봐줘.”
저는 그 말에 먼저 고개를 끄덕입니다. 약을 먹는 시간에 아이에게 필요한 사람은 잘했는지 못했는지 점수를 매기는 사람이 아니라, 안전한 방법을 함께 확인하고 끝까지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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