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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별말 없이 학교에 가던 아이가 발표를 앞두고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했습니다.
“아빠, 오늘 학교 안 가면 안 돼?”
처음에는 학교에 가기 싫어서 핑계를 대는 줄 알았습니다. 전날까지 잘 놀았고 아침밥도 평소처럼 먹었기 때문입니다.
“학교 갈 시간이 되니까 갑자기 배가 아픈 거야?”
제가 묻자 아이는 대답하지 않고 가방만 바라봤습니다. 계속 이유를 물어보니 그날 수업 시간에 친구들 앞에서 발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발표가 있는 날마다 비슷한 일이 반복되면서 단순한 꾀병으로만 볼 수 없었습니다.

배가 아프다는 말 뒤에는 발표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아이는 평소 가족 앞에서는 말을 잘했습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할 때도 목소리가 작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그렇게 힘들어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친구들 앞에서 말하는 게 그렇게 싫어?”
제가 묻자 아이는 한참 뒤에 대답했습니다.
“틀리면 애들이 웃을 것 같아.”
발표 내용을 모르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말을 하다가 내용을 잊어버리거나 목소리가 떨리는 모습을 친구들이 보는 것이 싫었던 것입니다.
그제야 발표 날마다 배가 아프다고 했던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아이가 일부러 부모를 속이려고 아픈 척한 것이 아니라, 긴장하면서 실제로 배가 불편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아이가 학교에 가느냐 가지 않느냐만 생각했습니다. 정작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지는 충분히 묻지 않았습니다.
발표를 피하게 해주는 것이 답은 아니었습니다
아이의 마음을 알고 나니 발표를 하지 않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담임 선생님께 연락해 이번 발표에서 빼달라고 부탁하면 당장 아이는 편해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발표가 있을 때마다 피하게 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학년이 올라가면 친구들 앞에서 이야기해야 하는 일이 더 많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다 하는 건데 너도 참아야 해”라며 억지로 보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아이에게는 짧은 발표도 큰 부담일 수 있는데 부모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다음부터 자신의 어려움을 말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발표를 없애는 대신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 부담을 나눠보기로 했습니다.
“발표를 안 하는 방법보다 덜 무섭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같이 찾아보자.”
아이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지만 잠시 뒤 발표문을 저에게 보여줬습니다.
거실에서 첫 문장을 읽는 연습부터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가족 모두를 앉혀놓고 연습시키지는 않았습니다. 그것도 아이에게는 또 다른 발표처럼 느껴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아이와 저만 거실에 앉았습니다. 발표문 전체를 외우게 하지 않고 첫 문장만 소리 내어 읽어보게 했습니다.
아이가 첫 문장을 읽자 저는 내용보다 끝까지 말한 것을 먼저 인정해줬습니다.
“첫 문장은 잘 들렸어. 다음 문장도 천천히 해보자.”
중간에 틀려도 바로 고쳐주지 않았습니다. 잠시 멈췄다가 발표문을 보고 다시 시작하게 했습니다. 발표할 때 모든 내용을 완벽하게 외울 필요는 없고, 잊어버리면 종이를 확인해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다음 날에는 엄마 앞에서도 짧게 읽어봤습니다. 아이가 괜찮다고 한 날에는 형제들 앞에서 한 번 더 연습했습니다. 목소리를 크게 내라고 반복하기보다 상대방이 들을 수 있는 정도로만 말해보자고 했습니다.
발표 당일 아침에도 아이는 배가 조금 아프다고 했습니다. 저는 “하나도 안 무서울 거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긴장될 수 있어. 첫 문장만 천천히 시작해봐. 중간에 잊어버리면 종이를 봐도 괜찮아.”
아이의 두려움을 없다고 하지 않고, 긴장한 상태에서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려고 했습니다.
얼마나 잘했는지보다 끝까지 해본 것을 물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발표를 잘했는지부터 묻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점수나 친구들의 반응을 먼저 물으면 아이가 또 평가받는다고 느낄 것 같았습니다.
“오늘 발표는 해봤어?”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처음에는 목소리가 떨렸는데 중간부터 괜찮았어.”
친구들이 웃었는지 물었더니 아무도 웃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발표를 완벽하게 했다는 말보다 아이가 걱정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중요해 보였습니다.
“떨렸는데도 끝까지 했구나.”
제가 말하자 아이의 표정이 조금 편안해졌습니다.
그 뒤로 발표가 있는 날마다 아무 걱정 없이 학교에 간 것은 아닙니다. 아침에 긴장하기도 하고 발표하기 싫다고 말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예전처럼 바로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발표문을 미리 읽어보거나 첫 문장을 함께 연습해달라고 말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두려움을 없애기보다 견딜 수 있게 도와주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하면 꾀병부터 의심했습니다. 발표는 누구나 하는 것이니 그냥 참고 학교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발표를 완전히 피하게 해주는 것도, 두려움을 무시한 채 억지로 시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무엇이 무서운지 들어주고 작은 단계부터 경험하게 하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발표문 전체를 완벽하게 외우게 하기보다 첫 문장을 읽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부모 한 명 앞에서 말하고 괜찮아지면 가족 앞에서 연습했습니다. 발표가 끝난 뒤에는 얼마나 잘했는지보다 긴장하면서도 끝까지 해본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아이가 앞으로 모든 발표를 좋아하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발표가 있는 날이면 다시 배가 아프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도 무조건 꾀병이라고 단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대신 이렇게 물어보려고 합니다.
“이번 발표에서는 어떤 부분이 가장 걱정돼?”
아이의 두려움을 부모가 대신 없애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혼자 견디게 두지 않고, 감당할 수 있는 크기로 나누어 함께 연습할 수는 있습니다.
발표를 피하지 않으면서도 아이의 마음을 몰아붙이지 않는 것. 지금은 그것이 우리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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