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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평소보다 일찍 유치원에 도착해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당시 일곱 살이었던 딸은 여자아이들 옆에 있었지만 함께 어울려 노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 아이가 딸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고, 딸은 그 앞에서 “야옹, 야옹”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동물 놀이를 하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온 뒤 딸에게 그 놀이에 관해 물어보면서 제가 몰랐던 이야기를 하나씩 듣게 됐습니다.
친구들은 자신들이 주인 역할을 하고 딸에게는 계속 고양이나 강아지 역할을 시켰습니다. 딸이 자신도 주인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하자 친구들은 갑자기 놀이를 끝냈다고 했습니다.
제가 그날 유치원에 일찍 가지 않았다면 딸에게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질문하지 않았다면 우리도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몰랐을 가능성이 큽니다.

우연히 본 동물 놀이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유치원에서 본 장면만으로는 딸이 친구들에게 소외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함께 동물 놀이를 할 수도 있고, 딸이 고양이 역할을 좋아해서 맡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친구들이 너를 괴롭혔니?”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제가 직접 본 장면부터 물어봤습니다.
“아까 아빠가 봤는데, 그 아이가 네 머리를 만지고 너는 야옹야옹 소리를 내더라. 그게 무슨 놀이였어?”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물었습니다.
“그럼 너도 고양이 주인이 된 적이 있어?”
딸의 대답을 들어보니 여자아이들이 동물 놀이를 할 때 자신들은 주인 역할을 하고 딸에게는 고양이나 강아지 역할을 시켰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딸도 단순한 놀이라고 생각해 “야옹”이나 “멍멍” 소리를 내며 함께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딸이 자신도 주인 역할을 해보고 싶어서 친구에게 “이번에는 네가 고양이를 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친구들은 역할을 바꿔주지 않고 “이제 그만 놀자”라고 했습니다.
서로 역할을 바꿔가며 노는 것이 아니라 딸이 동물 역할을 할 때만 놀이가 이어졌던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제가 유치원에서 본 장면이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물어보니 몰랐던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동물 놀이 이야기를 들은 뒤부터 딸에게 친구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물었습니다.
“오늘 재미있었어?”라고만 물으면 아이는 “응” 또는 “그냥”이라고 짧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실제 상황을 떠올릴 수 있도록 질문했습니다.
“오늘은 그 친구와 다른 놀이도 했어?”
“친구들이랑 같이 놀았어?”
“또 무슨 일이 있었어?”
그러자 딸은 여자아이들에게 같이 놀자고 하면 친구들이 “내일 놀자”라고 말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다시 물어보면 또 “내일 놀자”라고 미뤘습니다.
한 번 약속이 미뤄진 것이라면 다른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말이 계속 반복되면서 딸은 여자아이들의 놀이에 쉽게 끼지 못했습니다.
딸의 물건과 관련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딸이 가방에 좋은 인형을 달고 가면 다른 아이가 자신의 물건과 바꾸자고 했습니다. 어느 날에는 딸의 가방에 달린 인형을 유치원에 있던 딱풀과 바꾸자고 했다고 합니다.
딸은 자신의 인형이 중요했기 때문에 싫다고 거절했습니다. 저는 딸이 원하지 않는 교환을 거절한 것은 잘한 행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다른 날에는 아이들이 딸의 가방을 열어 안에 무엇을 가져왔는지 확인했다고 했습니다.
친구가 물건을 바꾸자고 제안하는 것만으로 나쁜 행동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어린아이들은 다른 아이가 가져온 물건이 궁금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가방을 허락 없이 열어보거나, 싫다고 하는데도 계속 교환을 요구한다면 아이에게 분명하게 거절해도 된다고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각각의 일만 따로 보면 아이들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작은 일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놀이에 계속 끼워주지 않고, 딸이 원하는 역할은 받아주지 않으며, 물건과 가방의 경계까지 지켜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나씩 듣다 보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과 상대 부모에게 말해도 쉽지 않았습니다
딸의 이야기를 듣고 저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유치원 선생님에게 이야기해야 하는지, 상대 아이들을 직접 야단쳐야 하는지, 아니면 딸에게 싸우라고 가르쳐야 하는지 쉽게 결정하기 어려웠습니다.
부모 마음으로는 당장 상대 아이를 찾아가 따지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어린아이들에게 직접 화를 내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딸에게 “너도 똑같이 해” 또는 “밀리면 안 되니까 싸워”라고 가르치는 것도 마음에 걸렸습니다. 딸이 자신을 지키는 것과 다른 아이를 공격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있었던 일을 선생님과 상대 부모에게 이야기해봤지만 해결은 쉽지 않았습니다.
아이들 사이에서 직접 일어난 일을 어른들이 모두 본 것은 아니었고, 서로 조금 더 지켜보자는 식으로 미뤄질 때도 있었습니다.
신체적으로 때리거나 물건을 빼앗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단순한 놀이 문제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함께 놀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는 아이와 부모에게는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 일을 바로 ‘왕따’라고 단정해 상대 아이들을 나쁜 아이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아직 어린아이들이고, 관계를 맺는 방법과 다른 사람의 물건을 존중하는 방법을 배우는 중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딸에게 계속 참으라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딸은 원래 싫은 것을 거절할 줄 아는 아이였습니다. 실제로 인형을 바꾸자는 말에도 싫다고 했고, 동물 역할을 바꾸고 싶다는 말도 했습니다.
문제는 딸이 거절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딸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을 때 친구들이 놀이를 끝내거나 함께 놀아주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딸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해도 된다고 다시 알려주었습니다.
“나는 그 역할 하기 싫어.”
“이번에는 나도 주인 역할을 할 거야.”
“내 가방은 열지 마.”
“이 인형은 바꾸고 싶지 않아.”
싫다고 말하는 것은 친구와 싸우는 행동이 아니라 자기 생각과 물건을 지키는 행동이라고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싸우게 하기보다 다른 친구를 만날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선생님이나 상대 부모에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상황이 바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딸에게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친구들만 계속 따라다니라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딸이 다른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를 만들어주기로 했습니다.
딸은 여자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지만 남자아이들과는 비교적 편하게 놀았습니다. 지금은 주로 남자아이들과 함께 놀고 있습니다.
저희는 딸이 잘 지내는 남자아이들을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아이들이 집에서 편하게 놀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주고, 함께 키즈카페에 데려가 놀게 하기도 했습니다.
아이의 친구 관계는 유치원 안에서 저절로 해결되기만 기다린다고 반드시 좋아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부모가 시간과 비용을 들여 다른 친구와 만날 기회를 만들어줘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딸에게 꼭 여자아이들과만 놀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성별보다 딸을 존중하고 서로 즐겁게 놀 수 있는 친구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친구들이 예전처럼 딸에게 이상한 역할을 시키거나 가방을 확인하는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자아이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려 노는 관계가 된 것도 아닙니다.
완전히 해결됐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딸이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한 무리만 바라보지 않고, 편안하게 어울릴 수 있는 다른 친구를 만날 기회가 생겼다는 점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아이와 반드시 친하게 지내게 만드는 것보다 아이가 자신을 존중해 주는 친구를 만날 수 있도록 범위를 넓혀주는 것이 저희 집에는 더 현실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아이와 평소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아이와 평소에 자주 이야기하는 관계가 중요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딸은 집에서 부모와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제가 유치원에서 본 장면을 물어봤을 때 그동안 있었던 일을 하나씩 설명해 줄 수 있었습니다.
만약 딸이 부모에게 말해도 혼날 것이라고 생각했거나, 부모가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느꼈다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또 부모가 먼저 장면을 보지 않았다면 아이에게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 몰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오늘 유치원 어땠어?”라고만 묻기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질문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누구와 어떤 놀이를 했어?”
“친구가 뭐라고 말했어?”
“그때 너는 어떤 기분이었어?”
“네가 싫다고 했을 때 친구는 어떻게 했어?”
이런 질문을 한다고 해서 아이를 계속 의심하거나 친구 관계를 캐묻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가 말하고 싶을 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부모가 먼저 “그 아이가 너를 괴롭힌 거야”라고 결론을 내리면 아이의 대답도 그 방향으로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본 것과 아이가 말한 사실을 중심으로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유치원에서 같이 놀아주지 않으면 모두 왕따인가요?
A. 한두 번 같이 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왕따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아이들이 그날 하고 싶은 놀이가 다르거나 이미 놀이가 진행 중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아이만 계속 빼거나, 특정 역할만 시키고, 그 아이가 역할을 바꾸자고 하면 놀이를 끝내는 일이 반복된다면 부모가 상황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Q. 아이에게 싸우라고 가르쳐야 하나요?
A. 저희는 딸에게 먼저 때리거나 똑같이 괴롭히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대신 “나는 싫어”, “내 가방은 열지 마”, “이번에는 나도 다른 역할을 하고 싶어”처럼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말하도록 했습니다. 그래도 계속 불편한 상황이 생기면 놀이에서 빠져나오거나 선생님에게 알리도록 이야기했습니다.
Q. 선생님에게 바로 말하는 것이 좋을까요?
A. 아이들이 함께 노는 모습을 부모가 매일 볼 수 없기 때문에 선생님에게 사실을 전달하고 관찰을 부탁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처음부터 상대 아이를 나쁜 아이로 단정하기보다, 아이에게 들은 말과 반복된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좋습니다.
Q.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들과만 놀아도 괜찮을까요?
A. 저희는 딸에게 꼭 여자아이들과만 놀아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딸이 편안하고 즐겁게 어울릴 수 있으며 서로를 존중하는 친구라면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으로 초대하거나 키즈카페에서 함께 놀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것도 도움이 됐습니다.
아이가 말할 수 있는 관계가 먼저였습니다
제가 유치원에 일찍 도착해 아이들의 놀이 모습을 보지 않았다면 딸에게 구체적으로 묻지 않았을 것입니다.
딸에게 묻지 않았다면 친구들이 계속 “내일 놀자”라고 미룬 일과 동물 역할을 바꾸려 하자 놀이를 끝낸 일도 몰랐을 것입니다.
신체적인 폭력이나 물건을 빼앗는 행동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단순한 놀이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딸의 이야기를 하나씩 들으며 놀이에 계속 끼지 못하는 것도 아이에게는 힘든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선생님과 상대 부모에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바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딸에게 싸우라고 시키는 방법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싫은 행동은 거절해도 된다는 것을 다시 알려주고, 딸을 편하게 받아주는 다른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거나 키즈카페에서 함께 놀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지금도 딸이 여자아이들과 함께 잘 노는 것은 아닙니다. 주로 남자아이들과 어울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억지로 한 무리에 들어가게 하는 것보다 자신을 존중해 주는 친구와 편안하게 놀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아이가 부모에게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우리가 먼저 보고 물어보지 않았다면 딸이 혼자 겪고 있던 일을 계속 몰랐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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