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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아이 마음

첫째 둘째 다르게 대하는 마음 (죄책감, 바운더리, 자존감)

think80056 2026. 9. 5. 00:02

목차


    “엄마는 왜 나한테만 뭐라고 해?” 첫째가 어느 날 툭 던진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처음에는 두 아이를 똑같이 키우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돌아보니 첫째의 실수에는 목소리가 커졌고, 둘째가 같은 행동을 하면 아직 어리다며 웃고 넘어간 적이 많았습니다. 공평하게 키우려 애썼지만, 아이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던 것입니다.

    첫째의 한마디에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둘째가 첫째가 만든 블록을 손으로 건드렸습니다. 오랫동안 쌓아 올린 블록이 한꺼번에 무너지자 첫째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만지지 말라고 했잖아!”

    저는 상황을 자세히 보지도 않고 첫째부터 나무랐습니다.

    “동생한테 왜 그렇게 소리를 질러? 형이니까 좀 참아.”

    그러자 첫째가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내가 만든 건데, 왜 나한테만 뭐라고 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바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둘째가 먼저 건드린 것은 보지 않고 첫째의 큰 목소리만 문제 삼았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동생이 미운 것이 아니라 애써 만든 것이 무너져 속상했던 것인데, 저는 그 마음을 건너뛰었습니다.

    둘째에게는 왜 자꾸 웃음이 나왔을까요?

    두 아이가 비슷한 실수를 해도 제 반응은 달랐습니다. 첫째가 우유를 쏟으면 “조심하라고 했잖아”라는 말이 먼저 나왔습니다. 그런데 둘째가 우유를 쏟으면 휴지를 가져오며 “괜찮아, 닦으면 돼”라고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둘째가 더 어려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첫째도 지금의 둘째만 했을 때는 어렸습니다. 첫째에게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만큼 저 역시 긴장하고 조급했습니다. 반면 둘째를 키울 때는 한 번 경험해 본 일이라 조금 여유롭게 받아들였습니다.

    첫째가 더 말을 잘 알아듣는다는 이유로 기대도 커졌습니다. 제가 편해지기 위해 첫째에게 양보와 참는 일을 먼저 요구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됐습니다.

    “형이니까 참아”라는 말을 줄였습니다

    그날 이후 두 아이가 다투면 누가 형이고 동생인지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먼저 보려고 했습니다. 다시 블록 때문에 다툼이 생겼을 때는 첫째에게 “네가 열심히 만든 것을 동생이 건드려서 속상했구나”라고 말했습니다.

    첫째의 굳었던 표정이 조금 풀렸습니다. 그다음 둘째에게도 “형이 만든 것을 만지고 싶으면 먼저 물어봐야 해”라고 말했습니다.

    예전에는 첫째에게 참으라고 말하면서 다툼을 빨리 끝내려고 했습니다. 이제는 두 아이의 말을 한 번씩 듣고 각자 잘못한 부분을 알려주려고 합니다. 시간이 조금 더 걸려도 다툼이 끝난 뒤 남는 억울함은 줄어들었습니다.

    똑같이 대하는 것이 항상 공평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동안 저는 두 아이에게 같은 것을 주고 같은 규칙을 적용해야 공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마다 속상한 이유와 필요한 도움이 달랐습니다.

    첫째는 동생이 태어난 뒤 자신의 자리를 자꾸 양보해야 한다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둘째는 어려서 봐주는 일이 반복되면서 다른 사람의 물건도 마음대로 만져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첫째에게는 마음을 먼저 알아주는 시간이 필요했고, 둘째에게는 지켜야 할 기준을 분명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두 아이를 다르게 대한다는 것은 한 아이를 더 사랑한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마다 필요한 말을 골라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첫째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거창한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닙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첫째와 둘이 산책하거나 가까운 가게에서 간식을 먹었습니다. 그 시간에는 동생 이야기보다 첫째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과 요즘 좋아하는 것을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별일 없었어”라고 짧게 대답하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 친구 이야기와 속상했던 일을 꺼냈습니다. 동생이 장난감을 건드렸을 때도 예전처럼 바로 소리부터 지르기보다 “엄마, 동생이 또 내 것을 만졌어”라고 먼저 말하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 해결부터 하려고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많이 속상했구나. 엄마가 같이 이야기해 줄까?”라고 물었습니다. 이 짧은 대화가 우리 집에는 꽤 큰 변화였습니다.

    아이의 “불공평해”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엄마는 동생만 좋아해.” 아이에게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섭섭했습니다. 먹을 것도 똑같이 나누고 필요한 것도 빠짐없이 사주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지금은 그 말을 사랑의 양을 따지는 말로만 듣지 않습니다. ‘내 마음도 먼저 봐 달라’는 뜻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곧바로 “엄마가 언제 그랬어?”라고 반박하기보다 어떤 일이 속상했는지 묻습니다.

    아이의 말이 제 생각과 다르더라도 그렇게 느낀 마음까지 틀렸다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부모들이 궁금해하는 질문

    첫째와 둘째를 다르게 대하면 편애가 아닌가요?

    무조건 다르게 대하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잘못한 행동을 판단하는 기본 기준은 같아야 합니다. 다만 아이의 나이와 상황에 따라 설명하는 방법과 도와주는 정도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이유를 아이가 이해할 수 있게 말해 주는 것입니다.

    첫째가 동생에게 소리를 지르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소리를 지른 행동은 바로잡아야 하지만 그전에 왜 화가 났는지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속상한 건 알지만 소리를 지르지 말고 말로 알려줘”라고 이야기하면 마음과 행동을 나누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매번 두 아이의 말을 모두 들어줘야 하나요?

    바쁜 순간에는 길게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엄마가 지금은 바쁘지만 조금 뒤에 네 이야기를 들을게”라고 약속하고 다시 확인해 주는 것이 좋았습니다. 완벽한 해결보다 아이의 말을 잊지 않고 돌아보는 일이 더 중요했습니다.

    마무리

    첫째와 둘째를 다르게 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자책만 한다고 이미 지나간 일이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날부터 제가 자주 하던 말을 하나씩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형이니까 참아” 대신 “무슨 일이 있었어?”라고 물었습니다. “동생이잖아” 대신 “먼저 허락을 받아야 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도 두 아이에게 언제나 공평하게 행동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저도 피곤한 날에는 예전 말투가 튀어나옵니다. 그럴 때는 아이에게 솔직하게 사과하고 다시 이야기합니다.

    두 아이를 똑같이 대하는 것보다 각자의 마음을 빠뜨리지 않고 살피는 것, 그것이 제가 뒤늦게 배운 우리 집의 공평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