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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아이 마음

반려동물이 떠난 뒤, 아이에게 “여행 갔어”라고 말했다가 바꾼 말

think80056 2026. 9. 8. 00:01

목차


    우리 가족과 오랫동안 함께 살던 강아지가 세상을 떠난 날이었습니다. 아이에게 사실대로 말하면 너무 큰 충격을 받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댕댕이는 멀리 여행을 갔어”라고 말했습니다. 아이가 덜 슬퍼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면서 그 말이 오히려 아이를 계속 기다리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댕댕이는 언제 돌아와?”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면 강아지가 자주 누워 있던 자리를 먼저 살펴봤습니다. 현관문이 열릴 때마다 밖을 내다보기도 했습니다.

    “엄마, 댕댕이는 오늘 와?”

    저는 그때마다 “조금 더 기다려 보자”라고 대답을 미뤘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이는 강아지 밥그릇과 장난감을 그대로 두려고 했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배가 고플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야 마음이 철렁했습니다. 저는 아이의 슬픔을 줄여준 것이 아니라, 오지 않는 강아지를 기다리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강아지가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아이를 위해 둘러댄 말 같았지만, 어쩌면 제가 그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기 싫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날 저녁, 다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저녁을 먹고 아이와 나란히 앉았습니다.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 몰라 손만 만지작거렸습니다.

    “엄마가 댕댕이가 여행을 갔다고 했잖아.”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제대로 말하지 못했어. 댕댕이는 몸이 많이 아팠고, 이제는 우리 집에 다시 올 수 없어.”

    아이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작은 목소리로 “다시는 못 봐?”라고 물었습니다.

    “응. 엄마도 그게 너무 슬퍼.”

    아이는 제 얼굴을 가만히 보더니 갑자기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함께 울었습니다. 아이 앞에서는 울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날은 눈물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한참 후 아이가 “엄마가 여행 갔다고 해서 기다렸잖아”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바로 사과했습니다.

    “엄마가 네가 너무 슬퍼할까 봐 겁이 났어. 그래서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어. 미안해.”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받아주었습니다

    그날 이후 아이는 비슷한 질문을 계속했습니다.

    “댕댕이는 지금 어디 있어?”

    “우리가 불러도 못 와?”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처음에는 이미 설명한 내용을 왜 또 묻는지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잊어서 묻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들은 이야기를 자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새로운 설명을 계속 덧붙이지 않았습니다. “댕댕이는 다시 집으로 올 수 없어. 그래도 우리가 함께 놀았던 기억은 남아 있어”라고 같은 말로 대답했습니다.

    어떤 날은 아이가 울었고, 어떤 날은 아무렇지 않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방금 전까지 울던 아이가 갑자기 웃으면 처음에는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슬프다고 하루 종일 울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이는 아이의 방법대로 마음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사진 한 장을 함께 골랐습니다

    강아지 물건을 바로 치우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모두 그대로 두지도 않았습니다.

    아이와 함께 사진을 보며 어떤 물건을 남겨두고 싶은지 물었습니다. 아이는 산책할 때 사용하던 작은 목줄과 공 하나를 골랐습니다.

    “이 공을 던지면 댕댕이가 제일 빨리 뛰어왔어.”

    아이는 강아지가 간식을 몰래 가져갔던 일, 소파에서 코를 골며 잠들었던 일, 비 오는 날 산책하기 싫어 버티던 일을 하나씩 떠올렸습니다.

    우리는 웃다가 다시 울었습니다. 아이는 강아지에게 그림을 그려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림 아래에는 “같이 놀아줘서 고마워”라고 직접 적었습니다.

    그림과 사진, 공은 작은 상자에 함께 넣었습니다. 거창한 행사는 아니었습니다. 우리 가족이 강아지를 기억할 수 있는 작은 자리를 만든 것이 전부였습니다.

    “엄마도 나중에 없어지는 거야?”

    어느 날 아이가 잠자리에 누워 “엄마도 나중에 없어지는 거야?”라고 물었습니다.

    순간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무조건 아니라고 말하면 또 사실을 피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아이를 겁먹게 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사람도 아주 오래 살다 보면 언젠가는 헤어지게 돼. 하지만 엄마는 지금 건강하고, 너와 오래오래 함께 지낼 거야.”

    아이는 제 손을 잡고 “내일 아침에도 있어?”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내일 아침에 엄마가 깨워줄게.”

    아이는 그 대답을 듣고서야 눈을 감았습니다. 그날 저는 아이가 먼 훗날의 설명보다 지금 곁에 있다는 확실한 말을 더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 앞에서 슬픔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아이가 걱정할까 봐 몰래 울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제가 눈이 붓거나 말수가 줄어든 것을 금방 알아차렸습니다.

    “엄마도 댕댕이가 보고 싶어?”

    “응. 엄마도 많이 보고 싶어.”

    그렇게 대답하자 아이는 제 옆에 바짝 붙어 앉았습니다. 우리는 서로 괜찮은 척하지 않았습니다. 보고 싶은 날에는 보고 싶다고 말했고, 재미있는 기억이 떠오르면 함께 웃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아이가 강아지 이야기를 꺼내는 횟수는 자연스럽게 줄었습니다. 길에서 비슷한 강아지를 만나면 한참 바라보았고, 사진을 보면 먼저 이름을 불렀습니다.

    저는 이제 그런 모습을 재촉하거나 다른 이야기로 돌리지 않습니다. “맞아. 우리 댕댕이도 저렇게 꼬리를 흔들었지”라고 말하며 아이와 추억을 이어갑니다.

    사진을 볼 때마다 함께 이야기합니다

    처음부터 제가 말을 잘한 것은 아닙니다. 아이가 상처받을까 봐 사실을 피했고, 그 때문에 아이를 더 오래 기다리게 만들었습니다.

    그 일을 겪은 뒤 저는 아이에게 슬픈 일이 생겼을 때 무조건 예쁜 말로 덮는 것이 꼭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짧은 말로 사실을 알려주고, 그다음에 나오는 질문과 눈물을 함께 견디는 일이 더 중요했습니다.

    지금도 가끔 아이와 강아지 사진을 봅니다.

    “엄마, 이때 댕댕이 정말 웃기지?”

    “그러게. 간식 달라고 저런 얼굴을 했었지.”

    강아지는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우리 가족이 함께했던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이도 이제 여행에서 언제 돌아오느냐고 묻지 않습니다. 대신 함께 지낸 날을 떠올리며 웃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아이에게 필요했던 것은 슬프지 않게 만드는 말이 아니라, 슬플 때 옆에 함께 있어 주는 사람이었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