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부모와 아이 마음

중학생 딸에게 남자 친구가 생긴 것 같을 때, 먼저 묻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think80056 2026. 9. 10. 00:02

목차


    중학교 1학년 딸이 어느 날부터 거울 앞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전에는 아무 옷이나 꺼내 입더니 요즘은 학교에 가기 전 여러 벌을 입어보고, 머리 모양도 몇 번씩 고쳤습니다. 휴대전화를 보며 웃다가 제가 가까이 가면 화면을 슬쩍 가리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식사할 때 특정 친구의 이름을 자주 이야기하다가도 제가 관심을 보이면 갑자기 말을 멈추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딸에게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생겼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빠 입장에서는 궁금했습니다. 누구인지, 같은 반인지, 정말 좋아하는 친구인지 바로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괜히 캐묻기 시작하면 딸이 앞으로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사실을 알아내는 것보다 딸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를 지키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직접 묻자 딸이 방문을 닫았습니다

    어느 날 딸이 휴대전화로 메시지를 보내며 웃고 있었습니다. 저는 별생각 없이 가까이 가서 물었습니다.

    “요즘 좋아하는 남자친구 생겼어?”

    딸은 웃음을 멈추더니 바로 표정을 굳혔습니다.

    “아니야. 그런 거 없어.”

    저는 한 번 더 물었습니다.

    “아빠한테는 말해도 괜찮아.”

    그러자 딸은 휴대전화를 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했습니다. ‘아빠한테 왜 말을 안 하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딸이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아직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딸의 휴대전화를 몰래 확인하거나 특정 친구의 이름을 계속 묻지 않았습니다. 궁금하다고 하나씩 확인하기 시작하면 당장은 답을 알 수 있어도 딸의 믿음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신 식사할 때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잠들기 전에는 충전하는 자리에 두는 기존의 가족 규칙은 그대로 지켰습니다. 딸만 감시하기 위한 규칙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함께 지키는 약속으로 두었습니다.

     

    질문하는 대신 제 이야기를 먼저 꺼냈습니다

    며칠 뒤 딸과 함께 드라마를 보다가 학생들이 서로 좋아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바로 물었을 것입니다.

    “너도 좋아하는 사람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제 이야기를 먼저 꺼냈습니다.

    “아빠도 네 나이 때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어. 그 친구 앞에서는 괜히 머리도 만지고 말도 잘 못했지.”

    딸이 웃으면서 물었습니다.

    “아빠도 그랬어?”

    “그럼.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괜히 설레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더라.”

    저는 거기서 말을 멈췄습니다. 누구였는지, 어떻게 됐는지 길게 설명하지 않았고 딸에게 다시 질문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날 딸이 바로 자기 이야기를 해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전처럼 표정을 굳히거나 방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며칠 뒤 차를 타고 가는데 딸이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아빠, 우리 반에 자꾸 나한테 메시지 보내는 애가 있어.”

    저는 순간 궁금했지만 그 아이의 이름부터 묻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래서 너는 어떤 기분인데?”

    딸은 처음에는 그냥 친구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조금씩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친구가 재미있을 때도 있지만 메시지가 너무 자주 오면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제가 궁금했던 것과 딸이 말하고 싶었던 것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누구를 좋아하는가’를 알고 싶었지만 딸은 ‘내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좋아하는 마음보다 서로 지켜야 할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딸에게 이성 친구를 좋아하면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행동이 괜찮다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답장이 늦는다고 계속 메시지를 보내지 않기, 상대방이 싫다고 하면 멈추기, 개인적인 사진을 요구하거나 보내지 않기, 밖에서 친구를 만나게 된다면 부모에게 장소와 시간을 알려주기처럼 실제 생활에서 지킬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딸에게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아빠가 그 친구가 누군지 알아내려는 게 아니야. 네가 불편한 일이 생겼을 때 혼자 참고 있지 않았으면 좋겠어.”

    딸은 별다른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뒤로는 딸이 외모에 신경을 쓰거나 휴대전화를 보며 웃어도 놀리지 않았습니다. 형제들 앞에서 “누구 좋아하나 봐”라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부모에게는 가벼운 장난이어도 딸에게는 자기 마음이 가족에게 공개되는 불편한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딸이 먼저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지금도 딸이 학교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날은 학교 이야기를 한참 하지만 어떤 날은 “별일 없었어”라고 짧게 대답합니다.

    예전에는 그 말을 들으면 다시 물었습니다. 이제는 꼭 답을 얻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 함께 간식을 먹거나 차를 타고 이동하고, 드라마를 보는 평범한 시간을 자주 만들려고 합니다. 마주 앉아 질문할 때보다 나란히 앉아 있을 때 딸이 자기 이야기를 더 편하게 꺼내는 모습을 여러 번 봤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딸에게 이성 친구가 생겼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직접 물었다가 방문이 닫히는 경험을 하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누구를 좋아하는지 알아내는 것보다, 딸에게 설레거나 속상한 일이 생겼을 때 부모를 피하지 않고 찾아올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먼저 묻고 답을 재촉하기보다 기다려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딸이 언젠가 자기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판단부터 하기보다 먼저 들어주려고 합니다.

    “말하고 싶을 때 이야기해. 아빠가 들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