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딸은 병원에 간다는 말만 들어도 표정이 달라졌습니다. 예방접종을 하는 날에는 현관에서부터 신발을 신지 않겠다고 버텼고, 병원에 도착해서도 제 손을 잡아당기며 집에 가자고 했습니다.처음에는 어떻게든 울음을 멈추게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접종을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마음에 남은 것은 아이의 울음보다 제가 했던 말이었습니다.“괜찮아. 하나도 안 아파.”딸에게는 그 말이 안심이 아니라, 지난번과 다른 약속처럼 들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번에도 안 아프다고 했잖아”접종 날짜를 앞두고 딸에게 병원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아이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습니다.“나 주사 안 맞을래.”저는 습관처럼 별로 아프지 않다고 말하려다가 멈췄습니다. 딸이 먼저 덧붙였습니다.“지난번에도 안 아프다고 했잖아. 그런데 아팠어...
열 살 아들은 물약이나 가루약은 잘 먹었지만 알약만큼은 어려워했습니다. 물과 함께 입에 넣고 한참 머금고 있다가 결국 뱉어냈습니다. 식탁 위에 물컵을 놓고 마주 앉으면 약 하나를 두고 긴 실랑이가 시작됐습니다.“물하고 같이 꿀꺽하면 되잖아.”제가 쉽게 말할수록 아이의 표정은 어두워졌습니다. 여섯 살 여동생은 알약도 곧잘 먹었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두 아이를 비교했습니다. 하지만 동생이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아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약을 먹는 시간에 자신이 못하는 것까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물컵은 비었는데 알약은 그대로였습니다아들은 약을 먹기 전에 물부터 여러 번 마셨습니다. 그러고는 손바닥 위에 놓인 알약을 들여다봤습니다. 입에 넣은 뒤에도 바로 넘기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약의 ..
다섯 살 아들은 손톱을 깎거나 머리를 자를 때마다 자지러지게 울었습니다. 병원에 가는 날에는 집에서부터 제 옷을 붙잡고 가지 않겠다고 버텼습니다. 처음에는 겁이 조금 많은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하나도 안 아파.”“금방 끝나니까 조금만 참아.”저는 이런 말을 반복하며 아이를 설득했습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남편과 함께 아이를 붙잡고 빨리 끝내려고 했습니다. 손톱을 다 깎거나 진료를 받고 나면 해야 할 일을 마쳤다는 생각에 안도했지만, 아이의 두려움은 갈수록 커졌습니다.나중에는 손톱깎이를 꺼내는 모습만 봐도 두 손을 등 뒤로 숨겼습니다. 미용실이라는 말을 들으면 귀부터 막았고, 병원 건물이 보이면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아이를 빨리 움직이게 하는 데만 신경 썼을 뿐, 무엇이 그렇게 무서운지는 제..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은 아침마다 등교 준비를 늦게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부족해지면 제가 양말과 준비물을 찾아주고 가방까지 현관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많이 도와줄수록 아이는 오히려 더 천천히 움직였습니다. 제가 재촉할수록 아이의 움직임은 느려졌습니다등교를 앞둔 아침이면 집 안에서 같은 말이 반복됐습니다.“양치했어?”“아직.”“가방은 챙겼어?”“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아들은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자기 방부터 찾아보지 않고 저부터 불렀습니다.“아빠, 체육복 못 찾겠어.”저는 아이가 학교에 늦을까 봐 옷장을 열어 체육복을 찾아줬습니다. 물병에 물을 담고 준비물도 가방에 넣어줬습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나면 아이보다 제가 더 지쳤습니다.차 안에서는 “내일은 일찍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들도..
일곱 살 아들은 병원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중에서도 치과를 가장 무서워했습니다. 대기실까지는 잘 들어가다가도 진료 의자만 보면 제 손을 잡고 뒤로 물러났습니다.“아빠, 오늘은 치료 안 하면 안 돼?”저는 충치가 더 심해질까 걱정돼 아이를 달랬습니다.“조금만 참으면 금방 끝나. 하나도 안 아파.”하지만 막상 진료가 시작되면 아이는 입을 꼭 다물었습니다. 선생님이 입 주변에 손을 대려고 하면 고개를 돌렸고, 팔과 다리를 계속 움직였습니다. 한번은 의자에서 내려와 진료실 밖으로 뛰어나간 적도 있었습니다.그때까지 저는 아이가 겁이 많고 참을성이 부족해서 그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번 치료를 중단하고 돌아오면서, 억지로 의자에 앉히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아프지 ..
아이가 잘못한 일을 형제나 친구 탓으로 돌릴 때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거짓말부터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아이가 사실을 숨기는 이유를 먼저 살펴보니 대화를 시작하는 방법도 달라졌습니다. 물컵을 깨뜨리고 동생 탓을 했습니다어느 날 거실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달려가 보니 바닥에 물컵 조각이 흩어져 있었고 아들은 당황한 얼굴로 서 있었습니다. 다친 곳이 없는지 먼저 확인한 뒤 물었습니다.“컵은 어떻게 깨졌어?”아들은 잠시 망설이더니 거실 반대편에 있던 동생을 가리켰습니다.“동생이 내 옆으로 지나가서 그랬어.”하지만 상황을 살펴보니 아들이 컵을 건드린 것이 분명했습니다. 저는 화가 나서 다시 물었고 아들은 자기가 깨뜨리지 않았다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결국 아이는 울면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