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크면서 갖고 싶어 하는 물건의 가격도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작은 자동차나 스티커 한 장으로도 만족했는데, 요즘은 친구가 가진 장난감이나 전자기기를 보고 와서 같은 것을 사달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얼마 전 장난감 가게에서 아들이 큰 레고 상자를 가리켰습니다.“아빠, 친구도 이거 있어. 나도 사주면 안 돼?”가격표를 본 저는 반사적으로 “너무 비싸. 안 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우리 집은 돈이 없어?”라고 물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라 바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우리 형편을 솔직히 알려주는 것과 어른의 걱정을 아이에게 떠넘기는 것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날부터 저는 통장에 얼마가 있는지를 설명하기보다, 우리 가족이 돈을 어떤 순서로 쓰는지 이야기해 주기로 ..
중학교 1학년 아들에게 방을 정리하라고 하면 언제나 같은 대답이 돌아왔습니다.“네네, 알았어요.”대답만 들으면 곧 움직일 것 같았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 아들은 침대에 누워 휴대전화만 보고 있었습니다. 숙제를 했는지 물어봐도 “할 거예요”, 씻으라고 말해도 “조금 있다가요”라고 대답했습니다.처음에는 사춘기라서 말대꾸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들은 제 눈을 보지 않았고, 제가 무슨 말을 해도 건성으로 대답했습니다. 듣기 싫어서 일부러 무시하는 것 같아 저도 점점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네네”라는 대답 뒤에는 아무 행동도 없었습니다어느 토요일 오후, 아들 방에 들어갔더니 바닥에는 벗어놓은 옷과 과자 봉지가 널려 있었습니다. 책상 위에는 교과서와 장난감이 뒤섞여 있었습니다.“방이 ..
여섯 살 딸은 병원에 간다는 말만 들어도 표정이 달라졌습니다. 예방접종을 하는 날에는 현관에서부터 신발을 신지 않겠다고 버텼고, 병원에 도착해서도 제 손을 잡아당기며 집에 가자고 했습니다.처음에는 어떻게든 울음을 멈추게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접종을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마음에 남은 것은 아이의 울음보다 제가 했던 말이었습니다.“괜찮아. 하나도 안 아파.”딸에게는 그 말이 안심이 아니라, 지난번과 다른 약속처럼 들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번에도 안 아프다고 했잖아”접종 날짜를 앞두고 딸에게 병원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아이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습니다.“나 주사 안 맞을래.”저는 습관처럼 별로 아프지 않다고 말하려다가 멈췄습니다. 딸이 먼저 덧붙였습니다.“지난번에도 안 아프다고 했잖아. 그런데 아팠어...
초등학교 3학년 딸과 주말에 공원에 가기로 약속했습니다. 평일에는 잠들기 전에 책을 함께 읽기로 했습니다. 약속할 때는 저도 정말 그렇게 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이 바빠지면 가장 먼저 미뤄지는 것이 딸과의 시간이었습니다.“오늘은 아빠가 늦어서 안 되겠다. 다음에 하자.”처음에 딸은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일이 몇 번 반복되자 공원에 언제 가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제가 먼저 주말 이야기를 꺼내도 짧게 대답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딸이 바쁜 아빠를 이해해준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들은 말은 달랐습니다. “어차피 또 못 가잖아”라는 말을 들었습니다토요일 아침, 딸에게 다음 날 공원에 가자고 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몇 시에 출발하는지, 무엇을 가져가는지부터 물었을 아이였습니다. 그날은 ..
열 살 아들은 물약이나 가루약은 잘 먹었지만 알약만큼은 어려워했습니다. 물과 함께 입에 넣고 한참 머금고 있다가 결국 뱉어냈습니다. 식탁 위에 물컵을 놓고 마주 앉으면 약 하나를 두고 긴 실랑이가 시작됐습니다.“물하고 같이 꿀꺽하면 되잖아.”제가 쉽게 말할수록 아이의 표정은 어두워졌습니다. 여섯 살 여동생은 알약도 곧잘 먹었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두 아이를 비교했습니다. 하지만 동생이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아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약을 먹는 시간에 자신이 못하는 것까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물컵은 비었는데 알약은 그대로였습니다아들은 약을 먹기 전에 물부터 여러 번 마셨습니다. 그러고는 손바닥 위에 놓인 알약을 들여다봤습니다. 입에 넣은 뒤에도 바로 넘기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약의 ..
다섯 살 아들은 손톱을 깎거나 머리를 자를 때마다 자지러지게 울었습니다. 병원에 가는 날에는 집에서부터 제 옷을 붙잡고 가지 않겠다고 버텼습니다. 처음에는 겁이 조금 많은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하나도 안 아파.”“금방 끝나니까 조금만 참아.”저는 이런 말을 반복하며 아이를 설득했습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남편과 함께 아이를 붙잡고 빨리 끝내려고 했습니다. 손톱을 다 깎거나 진료를 받고 나면 해야 할 일을 마쳤다는 생각에 안도했지만, 아이의 두려움은 갈수록 커졌습니다.나중에는 손톱깎이를 꺼내는 모습만 봐도 두 손을 등 뒤로 숨겼습니다. 미용실이라는 말을 들으면 귀부터 막았고, 병원 건물이 보이면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아이를 빨리 움직이게 하는 데만 신경 썼을 뿐, 무엇이 그렇게 무서운지는 제..